꽃이 피기 전에 했던 약속은 계절을 털어내고 손끝의 기억만 남았다
말을 잃어버린 여름이었다
꽃이 피기 전에 했던 약속은 계절을 털어내고
손끝의 기억만 남았다
먼지처럼 두터워지는 습기의 두께를 밟으며
외출 준비가 귀찮아 밍기적대듯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고
겨우 문을 나서도 만나는 사람 없이 헤매다 돌아왔다
잉크가 떨어진 채 필통에 오래 머문 볼펜처럼
겸연쩍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인사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손을 흔들면
습한 공기 끝에 서늘한 바람이 잡혔다
흔적 없이 하나의 계절이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