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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Sep 21. 2015

자동차 불빛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여자는 말이 없다. 남자는 지쳤는지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있다.

자동차 불빛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여자는 말이 없다. 남자는 지쳤는지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있다. 가로등조차 드문 거리. 라디오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팝송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미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깜깜하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달리고 있다. 언제부터 비가 온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커졌고,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시. 미안해진 남자가 사과를 하려 입을 떼는 순간, 여자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남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남자도 맞섰다. 사과하려던 생각 따윈 깨끗이 사라졌다. 여자가 울음을 터트렸지만 남자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말이 계속되며 여자는 더 서럽게 울었다. 금방이라도 차창을 뚫고 들어올 듯 비가 거세게 내렸다. 라디오에선 몇 곡 째 팝송만 이어졌다.
차를 타고 꽤 긴 시간을 달렸다. 어디에 가려했지.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운전을 하는 남자도 옆에 타고 있는 여자도 알 수 없었다. 목적지를 잃은 지 오래고, 언제부턴가 신호등 하나 없는 외길이 계속되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보이는 거라곤 자동차 라이트가 비추는 몇 미터 앞이 전부다. 비는 멈출 줄 몰랐고, 언제부터 움직였는지 알 수 없는 와이퍼는 지쳤는지 삐거덕거렸다. 오랜 침묵을 깨고 여자가 말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남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여자만큼 남자도 궁금했으니까. 어디 가고 있는 거냐고.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짜증보단 불안이었다. 몰라. 남자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모른다니. 모르겠다고, 정신없이 오다 보니 여긴데 어떡하라고. 아까부터 신호등도 하나 없고, 길은 계속 외길이고 표지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게 말이 돼, 그럼 어디 멈추고 물어봤어야 할 거 아냐. 여기 사람이 있냐! 그리고 그럴 정신이 있었어, 너 우느라고 정신없었잖아. 내가 운 거랑 무슨 상관이야, 운전하는 건 너잖아, 네가 알아서 했어야지. 그럼 울질 말던가, 운전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아까 같은 상황에서 사고 나지 않은 게 어딘데. 운 얘기 그만하라고! 그래서 지금 잘했다는 거야, 오밤중에 어딘지도 모르는 데를 달리고 있으면서, 비까지 이렇게 오는데, 일단 세워봐, 계속 가서 어떡하려고. 세우면 어쩌려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세우면 답이 나오냐, 일단 뭐가 보일 때까지 계속 가봐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일단 세우라니까, 길도 잘 안보이잖아, 갑자기 길이라도 끊어지면 어쩌려고. 너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가만있어, 안 그래도 짜증 나니까. 짜증, 지금 짜증이랬어, 나보고 짜증 난다는 거야? 좀! 그만 하라고. 뭘 그만해, 뭘! 잠시 잠잠해졌던 빗소리가 다시 커졌다. 세상을 흔들 만큼 큰 소리가 이어지고, 라디오는 그 안에서 벙어리가 된 듯했다. 한순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짧은 정적이 흘렀고, 라디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남자의 귀에 멜로디를 흘려보냈다. 이건 아까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남자의 손이 라디오의 입을 막으려는 순간,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차는 공중을 날았고 차 안을 훔쳐보던 어둠은 사방으로 휘둘린 자동차 불빛에 갈기갈기 찢겼다. 빗줄기와 함께 차가 떨어졌다. 찢긴 어둠이 제 자리를 찾아 덮쳐 들었다. 모든 것이 빗소리와 어둠에 묻혔다. 남자도 여자도 말이 없었다. 라디오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진_A Guy Taking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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