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사람 없는 질문을 하는 건 이제 가장 익숙한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떤 삶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습관처럼 들을 사람 없는 질문을 반복합니다. 벽에 귀가 있다면 덜 외로웠을까요. 왜 말을 안 해, 왜 손을 잡아주지 않아, 왜 안아주지 않아.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원망했을지 모릅니다. 벽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죠.
오늘을 어제, 아니 1년 혹은 그보다 더 예전의 어느 날과 바꿔도 구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달라진 건 날짜를 가리키는 숫자 몇 개뿐입니다. 이미 죽은 것도 모르고 뒤늦게 주마등을 반복해 보는 사람 같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혹시 그 사실을 잊었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 떠나지 못하고 맴돕니다. 누군가를 놀라게 하거나 괴롭힐 생각 같은 건 없는, 실은 누구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귀신이나 유령을 생각하면 공포보다 측은함이 앞선 것도 제가 그들 중 일부여서일까요. 저로 인해 누군가 힘들었던 것도, 제가 귀신이기 때문일까요. 본의 아니게 끼친 폐는 어디까지 용서받을 수 있나요. 귀신 때문에 괴로움을 겪은 사람도 안타깝지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 죽어서까지 폐를 끼치는 이의 상황은 또 어떠한가요. 그들의 문제는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당신은 무엇을 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오늘은 어떠했나요. 몇 시에 일어나 누굴 만났고 무슨 얘길 나눴나요. 차마 말하지 못해 혼자 되뇌다 잠결에야 흘려보낸, 그래서 귀가 없는 벽만이 들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혹시 저를 보았을까요. 저와 나눴던 대화의 일부나마 기억하고 있을까요.
하얗게 김이 서린 유리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댑니다. 언제가 당신이 그었던 선을 찾지만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창에 비친 벽은 말이 없습니다. 벽에도 눈이 있다면 당신이 쓴 글을 보았을까요. 보았더라도 말해줄 입이 없다면 전 알 수 없을 겁니다. 왜 말을 안 해.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원망했겠죠. 벽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요. 죽었다는 사실을 잊은 제가 문제일까요. 저는 어쩌다 그런 중요한 걸 잊은 걸까요. 대체
저는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걸까요.
2022.04.27.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