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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Mar 29. 2017

작은 소리에도 놀라
밤새 잠을 뒤척인 날이었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문득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작은 소리에도 놀라 밤새 잠을 뒤척인 날이었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문득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간단히 준비를 하고 나와 무작정 걸었어. 사람으로 북적이는 길을 다녔는데 누구 한 명과도 눈이 마주치지 않았어. 시간이 가는 것도, 힘든 것도 모르고 걷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어. 간단히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웠는데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르더라. 참 신기하지. 먹은 것도 없이 몇 시간을 걷기만 했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니. 허기를 느끼지 않으니 굳이 뭘 먹으려 하지도 않았던 거야. 침대에 누워서도 마찬가지였어. 딱히 무언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다시 일어나 뭔가를 차려 먹는다는 게 귀찮기도 했고. 멀뚱히 천장만 보며 누워 있었어. 이대로 잘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상할 정도로 잠은 오지 않더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몇 신지 궁금했어.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침대에 누운 지 세 시간이 지났더라. 이해할 수 없었어. 세 시간이라니. 그동안 내가 한 거라곤 천장을 바라본 것뿐이었어. 텅 빈 천장으로 세 시간이 채워진 거야. 길어야 삼십 분쯤 지난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라도 들었던 걸까. 너무 지친 나머지 잠이 들고 깬 것도 느끼지 못한 걸까. 모르겠어. 난 분명 잠이 들었던 기억이 없는데. 피곤하지도 않았고. 누운 시각을 착각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로 한참을 고민했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조금 전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낸 거야. 그러다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천장을 바라보다 사라진 세 시간과, 별 것 아닌 일을 고민하느라 지나간 몇 시간처럼, 허무하고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인간이구나. 한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다 보면 또 다른 누가 죽고, 그렇게 모두가 죽고 나면 죽은 사람을 기억해 줄 누군가도 없어지는 거구나 싶었어. 꼭 마지막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은 알아주는 사람조차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너무 조용하고 외롭게 죽어서 스스로가 죽었는지도 모르게. 그래.
지금 내가 그렇듯이.


사진: Lauren Mitc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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