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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May 29. 2017

오늘도 너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집에 온 지 이틀이나 지난 편지를 난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편지가 오고 가는 시간 있잖아. 며칠이고 설렘이 계속되는 그 시간이 좋아.
왜 편지를 쓰냐는 물음에 넌 그렇게 말했다. 하루에도 수백수천 통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이들 사이에서 넌 여전히 손편지를 쓰는,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오늘도 너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집에 온 지 이틀이나 지난 편지를 난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멍청히 우체통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완연한 봄에도 며칠 만에 들어온 집은 겨울이 숨은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책상 앞 의자에 앉자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내 방 천장이 저렇게 생겼었구나. 몇 글자 되지도 않는 생각을 참 오래도 했다.
손에 들고 내려놓지 못했던 네 편지가 생각났다. 겉봉투에 네 글씨로 적힌 너의 이름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숨을 깊게 고르고 조심스레 봉투를 뜯어 안에 담긴 편지를 꺼내 읽었다.
또 있어! 왜 손으로 적은 글자는 뭔가 감정이 묻어나잖아. 이 문장을 쓸 때는 이런 표정이었겠구나 싶은 그런 거. 사람마다 글씨체가 다 다른 것도, 그런 게 다 좋아.
석 장 가득 네 것이 분명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갈수록 글자들은 선이 되어 너의 얼굴을 그려나갔다. 이 편지를 쓸 때 너는 굉장히 즐거운 표정이었을 거다. 내가 기뻤던 얘길 할 때면 말하는 나보다 듣는 네가 더 행복하다는 듯 밝게 웃던 그 표정으로,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한창 적고 있던 그때의 모습처럼-며칠 뒤에야 난 ‘그때 이거 쓰는데 너한테 들켜서 엄청 민망했다’고 적힌 편지 한 통을 받았다-그렇게 이 편지를 썼을 것이 분명했다.
산보다 바다가 좋다던 넌, 오늘 나무 아래 누워 깊은 잠에 들었다.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사흘이 지났다. 너를 아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많은 사람이 울었고 난 그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저리도 빨리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집에 돌아온 조금 전까지도 난 모든 것이 흐릿하고 둔하게 느껴졌다. 너의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너무 즐거운 편지라, 문장마다 떠오르는 너의 모습이 사뭇 즐거워 보여서, 그런데도 웃지 못하는 나와 더는 답장을 할 수 없는 현실이 숨 막히도록 답답하고 싫어서, 네가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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