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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Aug 09. 2017

남자는 추위에 몸을 떨다 눈을 떴다.

넓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남자는 추위에 몸을 떨다 눈을 떴다. 넓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실내엔 아무런 조명도 없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줄지어 매달렸지만 어느 하나 불이 켜있지 않았다. 왼편 창을 통해 건물 안을 훔쳐보던 가로등 불빛 덕에 남자는 간신히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학교 체육관 정도의 넓이에 페인트만 대충 칠한 바닥, 두 개 층은 될 법한 높은 천장에 고스란히 드러난 철골과 세 줄로 길게 매달린 형광등, 투박하게 늘어진 전선, 조립식 구조물로 막힌 오른쪽 벽과 트럭 한 대 정도는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큰 문. 아, 공장이구나.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있는 곳을 깨달았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내로라할 유명한 브랜드의 기타 공장이었다. 두 달가량 아르바이트해 기타를 장만한 스무 살 청년이 자신의 첫 번째 기타를 자랑하며 락은 저항이라고 큰소리칠 때, 남자는 하루가 멀다고 자정이 넘게 일했다. 공장의 창문은 모두 막혀있었다. 높으신 누군가가 일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없도록 모든 창을 막아버렸다. 몇 시간에 한 번, 담배라도 한 개비 피우기 위해 밖에 나가야만 하늘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수 있었다.

공장의 소음 속에서 기타가 만들어졌다. 기타를 만드는 곳이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해야 했다. 남자는 그때 공장이 내는 소리를 울음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남자는 알았다. 공장은 그저 자신의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는 것을. 시끄러웠지만 그때의 소리엔 힘이 있었다. 속을 드러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자 공장은 정말 울기 시작했다. 창이 막혔는데 밤은 어찌 아는지, 공장은 밤마다 자신의 남은 뼛속에서 바람을 굴리며 울었다. 공장의 진짜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쫓기고 죽어가는 것이 사람만이 아님을 남자는 깨달았다.

해고는 빠르게 이뤄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닫기도 전에 남자를 포함한 모두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공장은 하루아침에 가동이 중단되었다. 며칠 만에 모든 생산 장비가 차에 실려 어딘가로 떠났고 공장은 텅 빈 속을 드러내야 했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본사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공장에서. 이들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며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정작 이 소리를 들어야 했던 사장은 귀를 막은 듯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장을 욕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자를 비롯해 시위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욕했다. 남자는 누가 옳은 것인지, 사장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저 사람들은 왜 우리를 욕하는 건지, 혹시 자신이 정말 욕먹을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알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지만 힘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비롯해 일하던 사람들이 왜 잘려야 했는지, 공장이 왜 문을 닫아야 하는지 역시 알 수 없었기에, 누구도 납득할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남자는 이곳에 남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남자는 여전히 텅 빈 공장이 낯설다. 패널을 뜯어내 구멍으로 남은 왼편 창이 죽은 사람의 감지 못한 눈 같았다. 매일 속으로 우는 공장이,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자신이, 이제 6년이 되어 가는데 무엇도 해결되지 않은 이 지리멸렬한 상황이, 익숙해질 수 없이 끔찍했다. 이대로 두 번 다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남자는, 공장은 두렵다.


Radiohead Exit Music

2012.07.20.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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