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넌 말이 없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새벽에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넌 말이 없었다. 난 가만히 너의 얘길 기다렸다. 오랫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던 빗소리가 전화 건너편에서도 들렸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새벽이 끝나갈 쯤에야 넌 전화를 끊었다.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건너편에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난 전화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걸지 않았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언제나 먼저 연락한 건 나였다. 넌 기다렸고, 내가 한 발만 다가서면 너와 난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늘 그랬다.
그 날 이후 난 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네가 기다렸을까. 난 그날부터 계속 뒤로만 물러난 것 같은데, 어쩌면 넌 앞으로 걸어오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안다. 너를 보며 뒷걸음치는 나와 달리, 넌 뒤돌아섰을 거란 것도 안다. 너를 붙잡았던 것도 나니까. 어디도 가지 못하고 원치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안다. 그날 네가 전화를 걸었던 건 다가오려는 게 아니라 돌아서려 했던 까닭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멀어지는 빗소리. 네가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