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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Sep 10. 2015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잊을 만도 한데, 이맘때만 되면 여자는 어김없이 이 문장을 떠올렸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잊을 만도 한데, 이맘때만 되면 여자는 어김없이 이 문장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히 떠오르는 일도 없다. 문득 몰랐던 습관 하나를 발견하듯 어느 날 여자는 어렴풋한 생각에 가려있던 이 문장을 마주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열 자 남짓한 이 한 줄이 여자의 족쇄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어렵다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이라 했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그녀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어려웠다. 정확히는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저 사람은 아직 나를 모른다. 조금 더 가까워지면, 보다 나를 잘 알게 되면 틀림없이 멀어질 것이다. 버림받을 것이 분명하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없음에도, 자신의 생각이 막연한 공포라는 걸 알면서도 여자는 걱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버림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자를 늘 초조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구에게 도움을 받거나 빚을 지면 안 된다 생각했다. 자신을 혹사시키면서라도 어떻게든 맡은 일-실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일을-완벽히 해내려 애썼다. 능력은 모든 것을 긍정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이 문장이 여자의 두 번째 족쇄였다.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받을 수 없다면 능력이라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몸 중 어느 쪽이 먼저 망가지기 시작한 건지 모르겠다. 무리하는 일이 이어지며 여자는 수시로 앓아눕곤 했다. 아픈 것보다 누구에게도 아픈 티 한 번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외로움은 짙어만 갔다.
결국 먼저 멀어진 것은 여자였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있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버림받기 전에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몇 번의 만남을 거절하고 한동안 연락을 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까워지는 과정이 어떠했든 멀어지는 과정은 늘 비슷했다. 그렇게 여자는 시간을 거리로 두기 시작했다. 나아지는 건 없지만 안 좋아지는 것 또한 없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또 한 번의 이별을 앞두고 여자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읊조려본다.


2013.10.03.26:22.
이소라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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