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엔 너무 흔한 이름이라고.
한 학년에 두 세 명은 꼭 있는 이름이었다고 했다. 학기 초엔 누굴 부르는지 몰라 서로 헷갈릴 때가 많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성에 이름 첫 글자를 붙여 부르거나, 성까지 같은 경우엔 큰과 작은, 빠른과 느린, 때론 안경이나 숫자로 구분해 불렸다고 했다. 나 역시 처음 널 알았을 때, 같은 이름의 다른 얼굴을 서너 명은 떠올렸다.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검색창에 누군가의 이름을 쳤을 때 동명이인의 얼굴이 함께 나열되는 것처럼. 그중 꽤나 뒤에 추가된 너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한 칸씩 앞으로 오더니, 결국은 첫 번째에 가장 크게 떠오르게 되었다. 무엇을 검색해도, 아니 검색을 하려 창만 열어도 가장 먼저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전에도 빈번히 보던 이름이지만 널 만난 뒤엔 더 자주 접하게 된 기분이었다. 인터넷 기사 댓글 창에서, SNS에서, 어느 담벼락에 적힌 낙서에서, TV뉴스의 인터뷰 장면이나 심지어 평소엔 뭐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던 크레딧 명단에서, 너의 이름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지 얼굴도 모르면서 너와 같은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막연히 좋은 사람일 거라는 멍청한 생각도 했다. 보물찾기에서 한 번도 뭘 찾은 적 없던 내게, 네 이름은 너무나 찾기 쉬운 보물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았던 전철역. 누군가 네 이름을 불렀다. 놀란 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그곳에 넌 없었다. 낯선 얼굴의 누군가가 네 이름에 답했고, 얼결에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날 성급히 고개를 돌렸다. 너이길 바랐지만 네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시간은 관계를 바꾸고, 관계는 의미를 바꿨다. 여전히 네 이름은 너무나 많은 곳에 있는데, 난 그 하나하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아직 놀라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을 한다. 잊기엔 너무 흔한 이름이라고. 그래서 그렇다고.
2018.01.30.3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