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이 May 05. 2018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내가 했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괜찮아. 아직 떠난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내게 넌 말했다. 뭐가 어떻게 괜찮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떨리는 두 손을 꽉 쥔 채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네게 그럴 순 없었다. 그런 널 보면서도 그 사람이 본 내 마지막 모습이 이랬을까, 그 사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때의 난 스스로를 달래기 급급했다. 괜찮다는 말을, 내가 했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네가 없고 지금의 나도 없는 만남이었다. 그날 내가 안고 토닥인 게 울먹이는 네가 아닌 예전의 나였듯, 나는 그 사람이 되어 네게 겹쳐 보이는 예전의 나를 만났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상대는 내게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던 날들. 넌 그때의 나처럼 수시로 눈치를 살피고, 미안해하고,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종종 입술을 깨물곤 했다. 어쩜 이럴까 싶을 만큼 빠짐없이 내가 했던 행동들이었다. 그럴수록 난 더 밝고 애정 어린 사람이 되어 너를 대했다. 모르겠다. 이미 나를 잘 아는 너기에 그런 날 보며 더 힘들진 않았을지. 노력할수록 감춰지기는커녕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게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난 입장을 바꿔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간혹 멍해지고,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못내 티냈던 그 사람을 다 떨쳐낸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난 누구도 위로하지 못했고, 넌 예전의 내가 느꼈을 아픔까지 더해 많이 울었을 거다. 괜찮지 않은, 괜찮을 리 없는 관계였다.

생각해 보면 순전히 네가 견뎌냈기에 가능한 나날이었다. 나라면 이미 지쳐 포기했을 텐데, 다른 감정이 더 커져 좋아하는 마음조차 가렸을 텐데, 넌 끝내 날 놓지 않았다. 고인 물을 흘려보낼 줄 몰라 악취만 풍기던 수영장이 하루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에 끝내 새롭게 채워졌다.

숨을 몰아쉬며 카페로 뛰어 들어온 네가 내 앞에 앉았다. 아까 나오려 했는데 급히 마무리할 일이 생겨 늦었다고, 미안하다 했다. 이미 메시지로 한 말을 처음 하듯. 언제나 잘못도 아닌 일을 몇 번이나 사과하던 너다. 그동안 난 네 손 한 번 작은 적이 없다. 나보다 몇 배는 조심스러웠을 너 역시. 나란히 걷다 어깨라도 스치면 흠칫 놀라던 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내게 미안했다는 걸 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널 보며, 떨리는 네 손을 잡고 말했다. 괜찮아.

2018.02.26.30:58.

작가의 이전글 좋아한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고 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