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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May 09. 2018

그런 밤 아세요?

10cm - 일시중지*

그런 밤 아세요? 집에 돌아왔는데 불을 켤 힘이 없는 거예요. 아니 불을 켜고 싶지 않았던가. 그냥 앉아 있었어요. 피곤하지 않은 날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더 힘든 날은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했어요. 너무 평범해서 지나고 나면 그런 날이 있었나 기억도 안 나는 날 있잖아요. 실은 건너뛰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그래, 라며 뭐라도 했겠지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날. 살지 않았어도 아무 지장이 없는, 그러니까 산 것 같지 않은 날이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 안 나요. 생각을 하긴 했을까요. 눈을 뜬 채로 기절한 듯 앉아 있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시계 초침이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볼 일도 없고 장식은 더더욱 아닌데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걸어놓은 시계였어요. 가끔 자려고 누웠을 때 이상하게 초침 소리가 크게 들려서 신경 쓰이곤 했던 시계요. 건전지가 다 된 걸까 싶었는데, 이상하게 너무 조용했어요. 이따금 들리던 지나는 사람들의 말소리나 차 소리는 물론, 무언가 돌아가는, 그러니까 콘센트 꽂힌 가전제품이나 아니면 지구가 움직이는 소리인가 싶을 만큼 아무것도 없는데 들리는 아주 낮거나 높은음 같은 거 있잖아요. 그냥 공간과 시간이 있어서 나는 기본적인 소리 같은 거. 그런 게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기분 아세요? 다른 소리가 없으니까 몸이 뛰는 게 들리는 거예요.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귀에 들렸다고요. 숨 쉬는 소리도, 특히 숨을 내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랐어요. 뭔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깨우면 안 되는 걸 깨울 것 같은, 혼자 게임의 룰을 어기는 것 같아서 잠깐 숨을 멈췄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아주 조금씩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작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어요.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죠. 사람은 참 시끄러운 동물이에요. 움직이진커녕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나요. 조용히 있으려면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해요.

창 밖을 봐야겠단 생각에 천천히, 코앞에 잠든 맹수에게서 도망치려는 듯 조심스레 움직였어요. 아닌 게 아니라 사방에서 절 노려보는 느낌이었어요. 뭔지 모를 것들이 어둠 속에 숨어 제가 소리 내길 기다리는 듯했어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고작 두 걸음. 그게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리곤 창 밖을 보는데

모든 게 멈춰 있는 거예요. 지나던 사람들도, 달리던 자동차도 모두 그 자리에 굳어 있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등은 바뀌지 않고 구름도 제자리였어요. 창 밖이 아니라 정밀하게 그린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고개를 돌려본 시계의 초침은 여전히 멈춰 있는데, 딱히 어딜 가야겠단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몸을 돌려 방 안쪽으로 걸었어요. 다시 두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더. 평소의 반도 안 될 것 같은 보폭으로 조금씩. 너무 긴장했는지 손끝이 저렸어요. 심장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고, 숨 쉬는 일은 거추장스럽기만 했어요. 이대로 이 밤이 가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어둠마저 멈춘 방 안에서, 이렇게 소란스러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동안 조심한 게 허무할 만큼 소리 내 울었어요. 모르겠어요. 왜 갑자기 눈물이 난 건지도 모르겠고 언제부터 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꼭 누군가 5초 앞으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갑자기 울었어요. 아니 울고 있었어요. 시간이 어떻게 그래, 싶을 만큼요.

자리에 주저앉아 땅에 머리를 박고 꺽꺽 대며 울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만큼 서럽게요. 하지만 방 안은 어둠뿐이었고, 창밖에 세상은 멈춰있었어요. 제 울음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어떻게 아침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침대에서 일어난 걸 보면 엎드려 울다 잠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날은 밝았고, 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하루를 시작했어요.

그런 밤이었어요. 시간의 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던 밤. 정신없이 돌아가던 화면 속 인물들이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른 사이 쌓였던 슬픔을 토해내며 다시 플레이 버튼이 눌리-지 않-기를 기다리던 순간 같은 밤이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많은 밤이요.


2017.09.01.31:37.

*10cm의 일시정지를 듣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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