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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Jul 31. 2018

Dear my sally

언니는 늘 운이 좋았다.

죽음은 동전을 들고 다녔다.

남자는 휴게소 주인에게 동전의 한 면을 고르라 했다. 테이블 위에 올린 동전을 한 손으로 가린 채였고, 주인이 동전의 올려진 면을 맞추지 못하면 죽일 생각이었다. 이미 경찰을 포함해 여럿을 죽인 남자였다. 사람을 죽이는 건 그에게 히치하이킹보다 쉬운 일이었다. 망설이던 주인은 앞면을 골랐다. 남자의 손 아래 동전도 앞면이었다. 남자는 휴게소 주인에게 운이 좋았다며, 잘 간직하라며 동전을 두고 떠났다. 죽음이 다녀간 자리에 25센트 동전이 남아 있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며 대체 저 사람은 뭘까 싶었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더니 동전 던지기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죽어, 싶을 만큼 터무니없는 사고 소식을 듣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죽음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이 보기에 죽음만큼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 있을까. 맥락 없이 나타나 동전을 던진다. 그리곤 절반의 확률로 끝. 무력한 인간은 그저 운이 좋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휴게소 주인은 운이 좋았다. 나라면 영락없이 죽었을 텐데.


언니는 늘 운이 좋았다. 신호등은 언니 걸음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 바뀌었고,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어김없이 세일이 시작됐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전철이나 버스를 타도 금세 자리가 났고, 수강신청 한 번, 명절 귀경길 티켓팅 한 번 실패한 적 없었다.

'복권 한 번 사 봐'는 '운이 좋네' 다음으로 언니가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럼에도 언니가 흔한 경품 이벤트 한 번 참여하지 않았던 건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누구나 한 번쯤 가훈이라 말해봤을 법한 '정직하게 살자'를 철저히 지켜오신 분들이다. 과한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탈이 난다고 생각하셨기에 소소한 행운은 감사히 받아들여도 요행을 바라선 안 된다고 하셨다. 언니는 그 말을 따랐다. 나이가 들며 자신의 운이 너무 좋은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더해지며, 언니는 언젠가 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조심했다.


운이 눈에 보인다면 언니를 그린 뒤 운을 몽땅 지우면 그게 나였다. 그러니까 언니와 나는 일란성 쌍둥이고, 나는 늘 운이 없었다.

신호등은 깜빡이다 막 바뀌어 한 바퀴를 꼬박 기다려야 했고, 무언가를 사면 이튿날 세일이 시작됐다. 전철이나 버스에선 항상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나보다 멀리 갔고, 수강신청을 할 때면 남들이 버린 과목을 주워가며 겨우겨우 시간표를 채웠다.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의 불행은 없었다. 그럼에도 운이 없는 일상이란 커다란 구덩이나 무성한 풀숲은 없지만 끊임없는 자갈밭을 걷는 것 같아서, 난 늘 기름칠 한 번 하지 않아 삐걱대는 기계를 억지로 돌리는 기분이었다. 나중에야 사전을 찾아보고 안 사실이지만 요행에는 '뜻밖에 얻은 행운' 말고도 '행복을 바람'이라는 뜻도 있었다. 부모님은 첫 번째 뜻으로 말씀하셨겠지만 난 왠지 두 번째 뜻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교 3학년 소풍날이었다.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의 눈치 게임이 되어 이미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었던 보물 찾기에서 언니는 혼자 힘으로 보물을 찾은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것도 총 스무 개 남짓 중 7개를. 같은 보물 찾기지만 언니에겐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를 줍는 것처럼 쉬운 놀이였고, 내겐 진짜 보물을 찾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싶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구분도 안 될 정도로 닮은 두 사람이 어떻게 타고난 운만 이렇게 다를까. 혹시 엄마 뱃속에서 두 사람 몫의 운이 나뉘지 않고 언니에게 간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사람은 각자 쥐고 태어나는 동전과 선택한 면이 하나씩 있어서 필요한 순간마다 동전 던지기를 해 행운과 불운이 나뉘는데, 언니와 난 모두 태어날 때 앞면을 골랐고, 각자 손에 쥐어질 동전이 잘못 만들어져 언니에겐 앞면만 있는 동전이, 내겐 뒷면만 있는 동전이 쥐어진 걸지도 모른다고.


샐리의 법칙과 머피의 법칙을 처음 배웠을 때, 세상에 언니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샐리와 머피도 쌍둥이는 아니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난 그날부터 마음속으로 언니를 샐리라 불렀다.






한 번의 운이 확률이라면 반복되는 운은 이자율이었다.

학교 성적은 언제나 언니가 조금 앞섰다. 실력은 비슷해도 모르는 문제를 찍었을 때 언니는 대체로 맞았고 난 어김없이 틀렸다. 심지어 두세 번 확인해도 한 번씩 마킹 실수가 나왔다. 점수와 등수의 변하지 않는 차이가 언니와 나 사이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그 정도가 유지될 거라고, 그래도 그동안 느낀 운의 차이만큼 크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내신 점수를 계산하기 전까진 그랬다.

두 사람의 내신 점수는 실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뚜렷했다. 어떻게도 운이 좋아서 혹은 실수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운도 누적된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실은 언니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닐까.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다. 순전히 운 때문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비슷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좁힐 수 없이 벌어진 점수 차이가 언니와 내 인생의 앞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수능은 한국 사람의 대부분이 받는 첫 번째 인생 평가다. 해당 교육과정 중 최악으로 기록될 만큼 어려웠던 수능에서 언니는 평소와 다름없는 점수를 받았다. 여기에 과감한 상향지원이 성공하며 언니는 그해 학교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간 학생이 되었다. 난 다른 과목은 선방했지만 탐구영역에서 등급이 크게 떨어졌다. 쓰려던 학과는 엄두도 못 냈고, 하향 지원한 과마저 추가합격이 뜨며 결국 재수를 결정했다. 언니는 적금을 탔고 난 원금마저 잃었다.

언니는 기숙사로 나는 기숙학원으로 떠나던 날, 함께 집을 나오던 두 사람의 모습을 난 어디서 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태어날 때였던가.


그 뒤 1년은 언니와 내가 처음 떨어져 지낸 시간이었다. 집은 물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오갔던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환경과 생활을 겪기 시작했다. 기숙학원 특성상 연락은 쉽지 않았고, 반년이 지나 추석에야 만난 언니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다행히 재수는 한 번으로 끝났다. 이듬해 대학에 입학해 자취를 시작했고, 한 학기 뒤부터는 기숙사를 나온 언니와 함께 살았다. 학교는 달랐지만 전철 한 정거장 간격으로 네다섯 개 대학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언니와 내가 다닌 학교는 그중에서도 가까운 편이어서 내가 살던 방에 그대로 언니가 들어왔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알았던 사실이지만 자취방에서 학교 정문까지의 거리는 오히려 언니가 더 가까웠다.

언니와 나는 쌍둥이는 물론 자매치고도 유독 친했다. 처음엔 생김새를 신기해하던 사람들도 나중엔 친분에 더 놀라곤 했다. 그중에서도 영화 취향은 언니와 내가 가장 잘 통했던 부분이다. 특별한 일 없이 함께 집에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란히 누워 영화를 봤다. 대학이 모여 있어서인지 작은 상영관까지 근처에 극장만 여섯 개였고-심지어 2년쯤 지나 하나가 더 생겼다-그중 절반은 규모가 작은 영화 위주로 상영해 주는 곳이라, 보고 싶은 개봉 영화를 챙겨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를 본 뒤 누워 잠들기 전까지 감상을 나누거나, 산책하듯 극장에 들렀다 오는 길은 언니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린 작품의 개봉을 앞두고 느끼는 기대와 걱정처럼, 언니와 나는 함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언니는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눈부시게 화려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모든 운의 속성이 그랬듯,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역시 언니를 통해 알았다. 언니는 최선을 계획한 뒤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었다. 그만큼 능력 있었고, 그걸 빛내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운까지 따르니 흔히 하는 말처럼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따로 없었다.

난 최악을 상정한 뒤 피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불운은 메울 수 없는 구멍 같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뿐이었다. 포기하고 바닥을 드러내거나 새는 것보다 빠르게 물을 채우거나. 다행히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까지는 아닌지 채울 만한 물독이었다. 다만 '나라가 망해갈 때 뭔가 할 수 있음에도 손 놓고 방치했던 사람'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행운의 신에게 방치된 나지만 내 곁엔 언니가 있었다. 언니의 행운은 내 불운보다 강했다. 혼자 있을 땐 생각도 못 했던 소소한 행운이 언니와 있을 때면 꽃잎처럼 날아오곤 했다.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하는 나도, 함께 있으면 언니의 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언니는 3학년 1학기를 마친 뒤 휴학했고, 1년 뒤 복학, 다시 1년이 조금 지난 뒤 취업에 성공했다. 두 번째 인생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은 것이다. 언니의 취직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같은 시간을 보내며 취업은 이미 노력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걸 몸으로 느꼈기에 부러움과 막막함이 밀려왔다.

언니는 첫 월급으로 내게 구두를 선물해줬다. 매끄럽게 선이 떨어지는 검은색 단화였다. 운동화만 신던 내겐 처음 갖는 구두였다. 면접 때 신으라며 옷도 옷이지만 일단 발이 편해야 한다고, 사실 이거 엄마 아빠 선물보다 비싼 거니까 취업하면 연말에 꼭 좋은 데서 맛있는 거 사라고, 언니는 말했다. 자기도 구두는 신은 지 꽤 된 한 켤레밖에 없으면서. 정작 새 신발이 필요한 건 언니일 텐데.

고시생이 부모님께서 써 주신 부적을 책상 앞에 붙여 놓듯 언니가 사준 구두를 책상 오른편 아래 놓았다. 언니는 무슨 신발을 그렇게 모셔놓냐며 머쓱해했지만 난 차마 그 구두를 신발장에 넣어 놓을 수 없었다.


내가 그 구두를 처음 신은 건 언니의 장례식에서였다.






반짝이는 내가 영정 사진 안에서 웃고 있었다.

혹시 내가 죽은 건 아닐까. 언니가 아니라 내가 죽었고, 난 죽은지 모른 채 여기 서 있는 거고, 그러니까 사실 저건 내 사진이고,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밝게 웃고 있는 걸, 난 저렇게 빛나는 사람이 아니잖아. 얼굴은 같아도 분명 언니였다. 날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질감을 느낄 만큼 해맑게 웃고 있는.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이렇게 불쾌하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을 왜.

수시로 머리에 공기 방울이 씌워졌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멀기만 했다. 그런 날 낚아채 현실로 내동댕이친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언니와 날 익히 알던 사람들도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곤 했다. 하물며 두 사람을 함께 본 적이 없거나 쌍둥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사람들은 외마디 비명을 숨기지 못했다. 주저앉거나 너무 놀라 예의조차 잊은 건지 노골적으로 언니와 내 얼굴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보던 사람도 있었다.

호기심은 참 무례한 것이었다. 목적지는 따로 있음에도 불행의 형태가 궁금해 기웃거리듯, 복도를 지나며 다른 빈소 안을 훑어보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거나 뒷걸음치며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누가 소문이라도 냈는지 티 나게 안을 힐끗거리며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 코끝에 묻은 악취처럼 어딜 가도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얼굴을 할퀴고 지나는 사람들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 언니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그리고 부모님은-아직 울지 못했다. 가족보다 먼저 우는 조문객들을 보며 눈물의 방아쇠가 있다면 그건 어떻게 당겨지는 걸까 궁금했다.

누군가에겐 그게 내 얼굴이었다. 그 사람들이 날 보고 왜 울었는지, 어떤 기분이었을지 난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럴 때마다 내 기분이 어땠는지 역시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래 자리를 지켜준 고등학교 동창들과 건물 입구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언니의 친구며 동시에 내 친구인 한 명이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겨우 참다 터진 눈물인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다 몇 번, 언니 이름을 불렀다. 언니가 그리워 부른 건지 아니면 나와 언니를 헷갈린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동창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건물로 들어섰다. 밤이 늦으며 장례식장도 조용해졌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빈소로 향하는데, 모퉁이 너머 좁은 복도 안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비우기 전 인사를 나눈 친척이었다.

아니 영정 사진하고 똑같은 얼굴이 옆에 서 있는데 어떻게 안 놀래요. 하긴 나도 무슨 공포 영환 줄 알았다니까, 영정 사진은 웃고 있는데 옆에 산 사람 표정은 죽을상이니 더 이상한 거 있지. 교통사고라면서요, 어떻게 된 거래요. 뉴스 안 봤어, 계속 나오잖아, 이번 명절에 가장 큰 사고라고. 아 그 버스 구른 거요, 버스 기사가 졸았다고 했나, 거기 탔던 거예요? 그렇다니까, 버스 탄 사람 중에 산 사람이 없다잖아. 차가 완전히 구겨졌던데요 뭘, 아유 명절에 이게 무슨 일이래요. 그러게 하필 명절에, 운도 없지 참. 근데 첫째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리기로 유명하지 않았어요, 이번에 취직도 한 번에 했다면서요. 그러니까, 대학 갈 때도 그렇고 부러워하는 사람들 많았는데 이게 뭐야. 그러게요, 사람 일 모른다더니. 근데 있지, 원래는 걔가 그 버스를 타는 게 아니었대. 그건 또 무슨 얘기예요? 원래는 언니가 기차를 타고 동생이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글쎄 일이 생겨서 그걸 바꿔 탄 거라잖아. 뭐야 그럼, 첫째가 아니라 둘째가 버스에 탈 뻔한 거예요? 그렇다니까, 버스표도 동생이 예매한 거래. 그런데 그걸 왜 바꿨대요, 아니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런가, 그래도 이건 꼭

첫째가 둘째 대신 죽은 거 같잖아요.


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몇 겹의 공기 방울이 머리에 덧씌워졌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사고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내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죽어야 했다고, 언니가 나 대신 죽은 거라고.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분담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귀경길 티켓팅은 언니의 몫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이게 어려운 일이 맞나 싶을 만큼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기차표를 예매하곤 했다. 한 번은 재미 삼아 언니 옆에서 티켓팅을 시도해 보았지만, 언니와 나 사이엔 낀 이만이 넘는 대기자 수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언니가 티켓팅에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은 자리가 하나뿐이었고,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언니는 서둘러 그 한 자리를 예매했다. 결제를 마치고서야 언니는 한 자리를 어떡하지, 그냥 취소하고 같이 버스 탈까, 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당황한 언니와 달리 난 그때 마지막 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언니의 손을 보며 처음으로 티켓팅다운 티켓팅을 봤다는 신기함이 더 컸다. 물론 가장 놀라운 건 절반이나마 언니가 티켓팅에 실패했다는 사실이었지만.

표를 취소해야겠다는 언니에게 그래도 예매한 김에 한 명이라도 편히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나는 버스 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원하는 시간대를 구하지 못해 밤늦게야 도착하는 표를 끊었지만, 버스표는 내가 예매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예상 못 한 일도 아니라 별다른 감흥은 들지 않았다.

당일 아침, 예정보다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마친 언니는 갑자기 일이 생겨 기차를 못 탈 것 같다고 했다. 회사에서 급하다는데 신입이 어쩔 수 있겠냐고, 그러니 이건 네가 타고 가라며 잠이 덜 깬 내게 출력해둔 기차표를 줬다. 그래도 일이 많진 않아서 반나절 정도면 된다고, 버스는 탈 수 있으니 밤에 고향 집에서 보자고 했다. 그러곤 내가 뽑아 놓은 버스표를 들어 보이고는 서둘러 집을 나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난 언니가 기차표를 양보하려고 거짓말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언니 성격에 지금 물어본다고 솔직히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아 다시 내려놓았다. 고향 집에서 만나면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지만 언니는 집에 오지 못했다. 포장도 뜯지 못한 채 물에 흠뻑 젖은 휴지처럼 풀지 못할 물음만 가슴 한편에 남았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을까. 목소리는 물론 복도 어디서도 친척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빈소 앞에 잠시 멈췄다 접객실로 향했다. 일하시는 분을 도와 상을 치웠다. 사람들이 일어선 자리마다 음식이 담겼거나 담겼던 일회용 용기가 남았다. 가운데 놓인 그릇들을 중심으로 국과 밥그릇, 수저와 종이컵이 대칭으로 놓여 있었다.

음식을 모으고 그릇을 포개는데 문득, 구겨진 종이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에 멀쩡히 서 있는 컵과는 달리 잔뜩 구겨져 쓰러진 종이컵을 주워 들었다. 안타까웠을까, 슬펐을까, 화가 난 걸까, 아니면 그저 손에 쥐고 있던 것이라 별생각 없이 그런 걸까. 구겨진 종이컵을 펴 보려 했지만 아무리 매만져도 구겨진 모양은 반듯이 펴지지 않았다. 어떻게도 펼 수 없는 자국이 남았다.

피가 나는 걸 본 뒤에야 베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종이컵을 든 손 위에 떨어진 눈물을 보고야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도 터지지 않던 공기 방울들이 한꺼번에 터져나가며 쌓였던 말들이 흘러나왔다.

왜 언니야, 나도 아니고 언니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데, 운이 없는 건 항상 나였는데 왜 이번엔 언니야, 한 명이 죽는다면 당연히 나여야 하는 거잖아, 사고가 났어도 나한테 났어야지, 죽어도 내가 죽었어야지, 왜 이번만 언니냐고, 언니라면 사고도 겪지 말아야지, 겪더라도 살아남았어야지, 이게 뭐야, 왜 언닌데, 왜,

언니는 샐리인데, 머피는 난데, 왜.


구겨진 종이컵 안에 물이 차올랐다.






해피엔딩이 뭘까.

말 그대로 행복하게 끝나는 거 아닐까. 주인공이든 보는 사람이든.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교양 수업 때 누가 그러더라. 주인공이 원하는 걸 이뤘으면 해피엔딩이라고.

뭐가 다른데? 원하는 걸 이뤄서 행복해지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거나 그렇게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는 거야. 그 학생이 예를 든 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어.

주인공 일행이 죽었어도 라이언을 구했으니 해피엔딩이라고?

응, 설령 죽더라도 원하는 걸 이뤘으면 해피엔딩이래.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일부러 극단적인 예를 든 것 같긴 해. <타이타닉> 얘기도 했어.

<타이타닉>은 왜?

침몰하는 배에서 잭이 가장 원했던 게 뭘까.

살아남는 거 아니었을까. 로즈랑 같이?

그치, 근데 둘 중 한 명만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건 가정이 아니잖아, 영화도 그랬는걸. 그래서 잭이, 아! 로즈를 살렸으니 해피엔딩이라고?

응. 물론 둘 다 사는 게 최선이겠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버리지 못할 한 가지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는 거야.

잭에겐 그게 로즈를 살리는 거였고?

그래서 목숨을 건 거고. 다행히 로즈가 그 뒤로 잘 살기도 했지.

신기할 정도로 잘 살았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사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랑 비슷한 얘긴데, 다들 <타이타닉>에 더 수긍한 느낌이더라.

아무래도 임무와 사랑은 다르니까. 영화가 얘기하는 바도 다르고. 근데 그러면 관객의 기분도 상관없는 거겠네?

응. 관객이 슬픈 해피엔딩도 가능한 거야.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이니까.

묘하게 원론적인 느낌이다. 다 제쳐놓고 주인공이 욕망을 실현했느냐만 따지는 거잖아.

그치? 그 얘기도 나왔어. 인물이 갈등을 극복하고 욕망을 이루는 과정이 이야기의 원형이라면, 그만큼 해피엔딩의 기준으로 적합한 것도 없다고.

<유주얼 서스펙트>도 해피엔딩이었네.

카이저 소제가 주인공이라면?

그 영화에서 경찰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긴 그런가.

주인공이 악당인데 해피엔딩이라면 일반 사람들한텐 너무 새드한 거 아냐? 새드보단 배드인가.

전에도 그 얘기했잖아. 은행 털거나 보석 훔치는 영화 볼 때, 성공했으면 하면서도 이거 범죈데 그래도 되는 걸까 싶다고.

그래도 막상 성공해서 한몫 챙기는 거 보면 괜히 기분 좋잖아. 당한 입장에선 최악인데.

<도둑들> 생각나지 않아? 전지현이 그러잖아, '해피엔딩 이즈 마인'이라고.

진짜 무서운 얘기네. 늘 해피엔딩인 도둑이라니.

전지현 같은 도둑이 늘 해피엔딩이라면 남아날 보석이 있을까.

그러니까 언니는 착하게 살아야 돼.

갑자기?

그렇잖아. 운이 좋다는 건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린다는 거니까. 언니 같은 사람이 나쁜 마음먹으면 위험하다니까.

딱히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응 안돼.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큰 능력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잖아. 언니 정도면 생각만으로도 위험해. 뭐가 어떻게 이뤄질지 모른다고.

넌 막살아도 되고?

너무 대놓고 운 없다고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영웅이 아니라고 막살아도 되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무슨 영웅 같잖아. 영웅 아닌 건 똑같거든.

아냐, 언니 정도면 가능할 수도 있어. 예전에 왜 <럭키맨>이라는 만화도 있었잖아. 주인공이 운으로 다 이기는 거.

뭐야 그게 언제적 만화야.

그냥 문득 생각나서. 그러고 보니 언니한테 잘 어울린다. '해피엔딩이즈 마인'.

내가 전지현 닮아서 그런 거 아닐까.

영웅 얘긴 정색하더니, 가만 보면 언니도 참 뻔뻔해.

그래서 닮았다고 안 닮았다고.

그냥 뭐 조금?

가만 보면 너도 참 뻔뻔해.

언니 닮아서 그렇지 뭐.

 





마지막으로 옷을 갈아입고 관에 누운 언니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얼굴은 물론 몸 어디에도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뒤늦게 사고 현장에 와 그 자리에 앉은 것처럼, 전복된 버스에 타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멀쩡한 모습이라 구조대조차 처음 언니를 발견했을 땐 생존자라 생각했다고 한다. 어디선가 스치듯 들은 얘기지만 몸 성하게 관에 누울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라 했다. 이상한 얘기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니는 운이 좋았다.






언니.

오랜만에 불러 본다. 며칠 안 됐는데 매일 붙어 다녀서 그런가, 마지막으로 얘기 나눈 게 벌써 꽤 오래된 것 같아. 언니는 어때. 며칠 동안 잘 지냈어?

언니 사고 소식 듣고 처음엔 멍했는데, 조금 있으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언니 <인 타임> 봤을 때 했던 얘기 기억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다면, 그것도 얼마 안 남았다면 뭐 할 거냐고 물었잖아. 난 그냥 어디 안 다치고 잘 있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언니는 그랬잖아, 앞뒤 가리지 않고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 볼 거라고.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혼자 이것저것 떠올리며 즐거워하는 언니 표정을 보며 뭐가 그리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평소에 하지 못한 것도 많을까 궁금했어. 언니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그냥 그거 다 해봤을 텐데. 엄마 아빠가 뭐라든 복권도 사고 경품 이벤트도 다 해보면서 흥청망청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


언니.

언니가 조심했던 게 나 때문이라는 거 알아. 언니가 운이 좋을수록 내가 불운해지는 거 같다고,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기보단 날 먼저 걱정했단 거 알고 있었어.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어. 언니가 내 운을 뺏어갔다고 말이야.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내 옆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 서글프더라. 운이 대체 뭐길래, 왜 똑같이 생겨서 내 능력으론 어찌할 수 없는 부분만 이렇게 다른 거냐고, 막연히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했어. 그래서 알게 모르게 언니를 피하기도 했고. 물론 언니는 다 알았겠지만.

나 재수할 때 진짜 힘들었거든. 왜 이렇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그냥 언니가 계속 생각나더라. 왜 그때 추석에 봤을 때, 그렇게 언니가 멀어 보일 수 없었어. 난 매일 밥 먹고 문제 푸는 기계처럼 사는데, 대학 생활 잘 하고 있는 언니를 보니까 자꾸 눈물이 나는 거야. 언니는 내 생각해서 티 안 내려고 하는데, 미안할 일도 아닌데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그게 더 속상하더라.

우습지.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고작 1년도 안 되는데 그땐 내 삶에 너무 크고 진한 점이 찍힌 기분이었어.


언니.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내가 힘들었던 건 언니가 없어서였어. 언니가 계속 생각났던 것도, 오랜만에 봤을 때 자꾸 눈물이 났던 것도, 사실은 같이 있고 싶어서, 언니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해서였어. 같이 자취하면서 확실히 알았어. 난 언니에게 무엇도 뺏긴 적이 없다는 걸. 오히려 생각할수록 언니는 내게 고마운 사람이라는 걸.

언니가 없다고 내가 운이 좋았을까. 아니, 그럼 난 그냥 아무것도 없었을 것 같아. 해가 없어서 빛나지 못하는 달처럼. 영영 어둡기만 한 행성으로, 그렇게 살았을 거야.

나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 어쩌면 내 평생의 운을 모아 언니를 만난 건 아닐까 하고.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언니를 만나 다행이라고.


언니.

나 솔직히 무서워. 언니 없이 내가 괜찮을까. 늘 최악부터 생각했는데, 언니가 없는 상황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 말 들으면 언니 속상할 텐데. 이럴 땐 확실히 언니가 언니고 내가 동생 맞는 거 같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볼게. 언니가 그랬잖아. 운이 없는데도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는 게 더 대단한 거라고, 그래서 내가 자랑스럽다고. 그 얘기 듣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언니는 모를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그때 언니가 더 자랑스러워할 만큼 열심히 살게. 운 같은 거 없이도 내가 이렇게 오래 잘 살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타이타닉>의 로즈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잘살아 볼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천국과 지옥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언니라면 좋은 곳에 갔겠지. 언니는 늘 운이 좋았으니까, 어디서든 행복할 거야. 언니만큼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안녕, 언니.

안녕, 나의 샐리.


2018.05.31.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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