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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Oct 01. 2018

바다로 간 달팽이를 아십니까?

글쎄 그 달팽이가 끝내 바다로 갔다고 합니다.

바다로 간 달팽이를 아십니까? 왜 욕조에 누웠을 때,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길을 나섰을 때 다가왔다는 그 달팽이 말입니다. 그래요, 아무도 가지 못한 바다로 가겠다던, 기억에 파도소리가 들린다던 그 정신 나간 달팽이 말입니다. 글쎄 그 달팽이가 끝내 바다로 갔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해와 달이 수없이 바뀌고 계절이 몇 번을 오가도록 달팽이는 계속 한 방향으로만 갔습니다. 차에 치이거나 누군가의 발에 밟힐 뻔한 일이 비일비재했답니다. 들짐승이 나오는 곳은 뻔하지만 차와 사람은 어딜 가든 있으니까요. 어떻게 그 많은 발과 바퀴를 피했는지 도무지 신기한 노릇입니다. 게다가 방향은 또 어떻게 그리 잘 잡은 건지. 조금만 틀어졌어도 시간이 배는 걸렸을 겁니다. 배가 뭡니까. 곱절의 곱절은 걸렸겠죠. 정말 기억이 남아 있기라도 했던 건지, 참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바다에 간 달팽이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죽었습니다. 바닷가의 소금기는 달팽이에게 쥐약이었던 것이지요. 우습지 않습니까? 오직 바다만 보고 갔는데 말입니다. 그 많은 발과 바퀴를 피하며 간신히, 정말 기적적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로 죽은 겁니다. 죽을 자리를 찾아 간 꼴이란 말입니다.

바다 가까이 다다랐을 때 몸이 자꾸만 쓰라리고 아파오자 달팽이는 무리한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독이라 여긴 거죠.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닷바람에 섞인 소금기 때문입니다. 달팽이가 느낀 건 여독이 아니라 바다에 더 가까이 가지 말라는 몸의 비명이었던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달팽이는 계속 바다로 갔습니다. 약에 취해 판단력을 잃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애초에 바다는 달팽이가 꿈꿔선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분에 넘치다 못해 목숨을 앗아갈 목표였으니까요. 누구도 달팽이에게 바다로 가선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갈 거라 생각을 못 했겠죠. 어떻게 달팽이가 바다에 갈 거라 생각하겠습니까. 허황된 꿈이나 꾸고 있구나, 장식처럼 가지고 다니다 푸념할 때나 쓰는 그런 꿈이구나, 그렇게 여긴 겁니다. 많이들 그러니까요.

한 순간이나마 바다를 보았으니 행복하지 않았겠냐고요? 짧지만 강렬한 감탄, 환희, 처음 보는 풍경의 경이로움과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 맞습니다. 그런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시간도, 목숨도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다고 믿는, 혹은 정말 그렇게 산 사람도 있죠. 누군가는 달팽이를 부러워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이죠, 혹시 최근에 바다 다녀오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 그러니까

달팽이가 꿈꿨던 바다가 그런 모습이었을까요?


2015.10.17.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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