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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Nov 25. 2018

첫눈이 온 날을 기억하시나요.

곧 눈이 올 것 같다고 해요.

첫눈이 온 날을 기억하시나요. 곧 눈이 올 것 같다고 해요. 첫눈이라는 말 참 이상하지요. 한 해의 시작이 겨울인데, 이미 몇 번이고 내린 눈인데, 세 번의 계절을 지나 다시 찾아온 겨울에서야 올해의 첫눈이라는 말을 써요. 그전에 내린 눈은, 지난 두 달여의 겨울은 여분의 것이었나요. 1월, 첫눈이지만 첫눈이 아닌 눈이 내렸어요.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올해의 첫눈도 며칠만 지나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텐데 1월에 눈 내린 날을 기억할리 없잖아요. 그런 거잖아요. 기억하지 못해도 눈은 내리고, 눈이 내려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요. 저는 여분의 겨울이고 첫눈이 아닌 첫눈이에요. 봄을 위해 견뎌야 하는, 지나가는 시간이에요. 당신은 찾아온 겨울이고 올해의 첫눈이에요. 일 년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에요. 당신 뒤엔 늘 제가 있고 제 뒤엔 세 계절이 지나야 비로소 당신이 있어요. 겨울은 참 이상해요. 봄도 여름도 가을도 한 해에 시작해 끝이 나는데, 겨울만 사이가 끊어져 있어요. 해를 혹은 봄여름가을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한 해의 시작이 봄이거나, 끝이 가을이었으면 좋겠다고. 여분의 계절 같은 건 없었으면, 며칠만 지나면 잊더라도 계절이 나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첫눈이 첫눈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계절의 변덕을 보며, 어쩌면 아주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엔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소원해 봅니다.


2017.11.14.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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