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 사는) 치과 의사다. 처음부턴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개인 오피스가 아닌 공립학교 안에 있는 클리닉에서 치과 의사로 일한다. 공무원은 아니고 그 클리닉을 설립한 사설 병원에 소속된 치과 의사이다. 나의 환자들은 모두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지금까지 쓴 것들은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한 후 주로 받게 되는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나열한 것이다. 그 이후에는 주로 질문이 끊긴다. 평소 궁금한 것이 많은 (어딘가 아픈 이가 있지 않은 이상) 직업은 아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실제 어렸을 때부터 치과 의사가 간절한 꿈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살면서 한 명밖에 만나 본 적이 없고, 주인공이 치과의사인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 뜻밖의 질문을 받게 되었다. ‘Do you like working there?‘ 거기서 일 하는 걸 좋아하냐고? 생각해 보면 매우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인데 실제로 이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가기 전엔 설렘을 느끼고, 떠날 땐 아쉬움을 느끼는 건가? 결코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이다. 출근하러 일어날 때마다 코비드 같은 전염병이 몰려와도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업을 택한 것을 후회하고, 마지막 환자 차트를 정리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그건 어떤 일을 하던 ‘직장’이라는 기관에 속해 정해준 스케줄 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하고 있는 환경은? 나의 직장은 규모가 꽤 큰 사설 병원에서 만든 클리닉이긴 하지만 공립학교 안에 위치해 있고, 언뜻 보면 업그레이드된 양호실 같은 작은 공간이다. 해당되는 공립학교들의 대부분은 다소 위험한 빈민가에 위치하여 있고, 그곳의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받아야 할 돌봄 들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는 경우들이 많다. 병원은 그런 학교들에 의료팀을 꾸려 들어가 클리닉을 열고 등록된 학생들이 학교에 와 있는 동안 부모님 없이도 필요한 진료들을 받을 수 있게 하여, 궁극적으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출퇴근 길은 개 똥, 토한 흔적들, 각종 쓰레기로 덮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유리창이 깨진 채 버려진 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진료도 예방에 초점이 맞추어줘 있어 이미 큰 문제가 있는 경우엔 내가 직접 해 줄 수 있는 시술은 별로 없고, 리퍼럴을 작성하고 부모님께 연락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고등학생들에겐 해 주던 시술조차 코비드 이후 중단되었고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깜깜무소식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직장이 어디냐고 묻거나, 거기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움츠러들곤 한다. 변변치 않은 곳에서 변변치 않은 일을 하는 거 같아서이다.
결국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싫어하는 걸까? 진료를 마친 뒤 이미 시작된 점심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카페테리아로 함께 달렸던, 이미 닫혀 버린 문을 두들겨 점심을 받아 들고 아이와 함께 웃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갱에 속해 있다 해도 믿을 만큼 무서운 표정과 옷차림을 하고 껄렁껄렁 들어왔지만 막상 진료 의자에 앉는 순간 순한 양으로 변해 겁먹은 눈빛을 머금던, 덩치 큰 고등학생 환자도 기억난다. 껌처럼 들러붙은 치석과 니코틴의 흔적들을 제거해 주며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을 때 진지하게 듣던 표정도, 나가면서 수줍게 땡큐를 건네던 모습도. ‘치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전화해 ‘치과 의사’의 자격으로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말할 수 조차 없었을 테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거 같아 치솟는 불만은 결국 더 좋은 것들을 더 많이 해 주고 싶은 마음과 닿아 있지 않을까. 다 해 줄 순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초점을 돌리고 이곳에 있다 보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이를 봐주고, 더 많은 부모들에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을 좋아하는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무서워하다가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앞다투어 나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나 역시 질세라 함께 웃으며 인사한다. 답은 그 웃음들 사이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