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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Nov 18. 2021

본전을 뽑는다

본전을 뽑는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투자한 것에서 적어도 투자한 만큼은 거둬야 한다는 말이리라. 그러나 그 투자한 것이 돈이고 거둬들이는 것은 딱히 돈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라면.


큰 아이의 9살 생일을 맞아 워터 파크로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숙박비는 생각보다 비쌌지만 아이의 생일 파티를 대신하는 여행이니 고민 끝에 결국 예약을 마쳤다. 팬데믹 내내 워터 파크 노래를 부르던 두 아이들은 몇 주 전부터 들떠서 가면 할 것들과 무엇을 싸갈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막상 떠나는 당일이 되자 출발이 예정보다 늦어졌다. 원래 계획은 내가 퇴근하자마자 떠나서 도착하는 날 저녁부터 워터 파크를 입장해서 노는 것이었다. 숙박비엔 워터 파크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어 더 비싼 것이었기에 본전을 뽑으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마땅했다. 그러려고 그 전 날 밤 짐도 다 싸놓았건만 당일 날 퇴근 후 갑자기 마무리 지을 일이 생기는

바람에 워터 파크는 이미 폐장할 시간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러 줄을 서면서 ‘이럴 거면 그냥 다음 날 일찍 출발해서 올 걸’ 속상한 마음에 한숨이 새어 나올 때마다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나는 부자다. 워터 파크 입장도 못 하고 첫날은 그냥 잠만 자지만 그래도 돈 따윈 아깝지 않은~ 여유 있는 부자다~’

아이들은 나의 주문 덕인지, 여행의 들뜸때문인지 워터 파크는 발도 못 디디고 방으로 올라갔지만 그날 저녁 호텔 방의 두 침대 사이를 점프하며 신나게 놀다 잠들었다.


드디어 다음 날, 전 날 못 논 걸 보상이라도 하듯 아침 먹자마자 입장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실내 워터 파크 중 하나답게 형형 색깔의 높이도 커브도 다양한 슬라이드들이 종류별로 있고, 서핑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으나 우리 아이들이 좋아라 한 곳은 파도풀과 자쿠지풀, 그리고 동네 놀이터에 있을 법한 높이의 곧게 뻗은 슬라이드가 다였다. 이렇게 놀다가는 본전도 못 뽑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본전 뽑자고 어린 두 아이들을 놔두고 나와 남편이 신나게 놀다 올 수도 없는 노릇, 아이들이 원하는 곳으로 다니다 보니 두어 시간 지났을까. 큰 아이는 인제 나가고 싶다고 했다. 벌써 나가려고 하냐고 핀잔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여기에 온 이유는 큰 아이의 생일맞이 여행인 걸 상기하며 참았다. 늦은 오후 재입장해 조금 더 놀긴 했지만 마음 한편 찜찜한 뭔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버리기 힘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고도 끌려 나오다시피 나오는 거 같던데 우리 아이들은 요 정도 놀 걸 이렇게 비싸게 왜 굳이 여길 왔지. 여기서 두 밤이나 자면서 있기로 한 건 역시 돈 낭비였나.


마지막 날 아침 체크 아웃을 하고도 워터 파크에 3시까지 입장이 가능했다. 아이들이 그냥 집에 가겠다고 하면 화가 날 거 같아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조금 더 놀다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오락실에도 들리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는 게임에 엄격한 만큼 이런 특별한 경우엔 즐기게 하는 편이라 그러자고 했다. 역시 한 시간 남짓 놀고는 다 놀았다고 했다. 뭐 이쯤 되니 나도 마음을 비운 상태라 그럼 이제 가자고 나왔다.


샤워 후 워터 파크 옆 오락실에 갔다. 큰 아이는 벌레 잡기 게임기에 앉았고 둘째 아이는 옆에 앉아 오빠를 응원했다. 멀티플레이어이가 가능했던 게임이었는데 아들은 아빠 보고 앉아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 아빠의 도움으로 엄청난 말벌을 격파한 뒤 다음 레벨로 올라가자 아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고 둘째 아이와 남편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깔깔 거리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아빠는 스키장 콘도의 회원이셨고 우리 가족은 겨울이 되면 그 콘도로 놀러 갔다. 운동을 좋아하셨던 아빠는 스키장에서 나와 언니, 남동생에게 스키를 배우게 하셨는데 그 당시 그 나이에 스키를 배우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었다는 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막상 아빠는 배우시지 않았고 스키복도 없이 청바지 차림에 한두 번 타시는 걸 본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배우는 수업료도 싸진 않았으리라. 엄마는 가격 대비 x번 이상만 타면 자유 이용권 리프트를 끊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스키를 타는 거 자체는 재밌었다. 리프트에서 안 넘어지고 내리는 것은 항상 긴장되었지만 스키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내려올 땐 날아가는 듯한 짜릿함이 있었다. 문제는 난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금방 그만 타고 싶어졌다. 그래도 왠지 x번 이상 타지 않으면 아까울 거 같아 언제나 그만 타고 싶어 하면서도 몇 번 더 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스키 타러 가는 것을 마냥 좋아했던 거 같진 않다. 또 다른 기억은 스키를 타고 돌아와 콘도에서 몸을 녹이고 밤이 되면 부모님과 다 같이 부설 시설인 오락실에 갔었는데 나 역시 오락실을 평소에 가지 않았던 터라 재밌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엄마가 쥐어준 동전들로 테트리스도 하고 두더지 게임도 하고…


그러고 보니 난 그때도 본전을 찾는 것에 예민했나 보다. 사실 아직도 추위를 많이 타기에 나 역시 오래 물놀이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손해 보는 거 같은 기분에 더 있으려고 했던 거다. 아이들은 기대만큼 오래 놀진 않았지만 노는 시간 내내 온전히 즐거워했고, 호텔 방에서도 여행 온 기분을 만끽했으며, 오락실에선 시시덕거리며 함께 게임을 했다. 나중에 몇 번이고  ‘그때 생각나? 그때 내 생일 때 워터 파크 갔던 거…’ 하며 회자될 기억이 더해진 거라면 그걸로 나의 본전 찾기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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