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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Dec 10. 2021

가난한 의사입니다만

“넌 어떻게 하다 그런데 있게 됐어?”


그러니까, 왜 다들 하는 것처럼 개인 오피스를 내지 않고 병원 소속 작은 클리닉의 직원으로, 월급쟁이 의사의 삶을 택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대학생부터 알고 지내던, 한 땐 가족보다 나의 삶을 더 자주 들여다보았다 할 수 있을 만큼 친하게 지내는 언니였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선뜻 묻지 못하는 질문.


나는 치과 의사다. 치과 의사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다른 개인의 치과 associate으로 일했던 초반 일 년 남짓을 제외하곤 비영리 단체 병원 소속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일했던 병원들이 크고 세련된 병원들도 아니었고 오히려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곳들에 주로 위치해 있었다. 처음으로 가게  클리닉이 있던 곳은 버스 타려고   있다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서 엄청 긴장하며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글쎄어쩌다 이런 길을 걷게 됐더라…


나의 장래 희망이 슈바이처 같은 의사라거나 마더 테레사였다 거나 한 적도 없었고, 그렇게 존경할 만한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성품, 또 이상을 구현해낼 만큼의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근사한 오피스를 개업한 치과의사인 내 모습을 상상한 적 또한 별로 없었고 성공해서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을 간절히 갈망한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한다는 상상도 그렇게 싫진 않았다. 미련할 정도로 공부에 매달리면서도 그냥 무난한 삶을 꿈꿨던 거 같다. 지금은 ‘무난’한 삶만큼 힘든 것도 없다는 걸 알지만… 내게 확실히 없었던 것은 야망이었다. 성공한 치과 의사 혹은 성공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다 야망에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야망이 항상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내가 그리는 삶이 그들과는 조금 달랐음을 얘기하는 것뿐이다.


몇 년 동안 내가 일하며 깨달은 것은 나는 환자들에게 건강상 혹은 기능상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는 의사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더 나은 미모를 위해 교정이나 래미네이트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환자에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며 시술을 권하지 않아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의사들이 잘 못 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들의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하여 그것에 맞는 시술을 해주고 그들의 자신감을 높여주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도, 그런 의사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저 내가 그런 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깨달은 것은 난 엄청 대단한 것을 해주지는 못 할지라도 일단 내가 하는 치료에 있어서는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차별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의사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내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환자들을 많이 보고 필요에 제한되 있는 치료를 주로 하는 클리닉에서 일하게    어쩌면 그리 힘든 결정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하진 않지만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누군가가 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갚아나가야  학자금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무섭지 않아?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무서운 적도 있었지만 매일 다니다 보니 익숙해졌고 결국 이곳 또한 우리네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퇴근길 무슨 영문인지 불에 타 폐허가 된 집 앞에서 해맑게 뛰어노는 길가의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은 매일같이 이곳에 사는구나. 난 그래도 낮에 와서 일만 하고 가면 되는데’라는 생각에 미안해진 적도 있다. 미안해하면서도 이곳에 와서 살 용기는 없는 내가, 결국 돌아갈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내가 과연 무섭다고 섣불리 말해도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 내가 얼마나 고생하며 치대를 다녔고 나름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아는 지인이 물었다. 그도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었고 최근 모든 공부를 마치고, 개인 오피스를 차리기까지 의례 밟는 경로를 거치는 중이었다.


“아깝지 않으세요?”


헛헛하게 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돌았다. 그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으며, 슬픔은 더욱더 아닌 복잡한 감정이었다. 하나만을 위해 달려온 나의 20, 어디서 멈쳐야 할지, 멈추어도 될지 몰라 서성이던 나의 30, 그렇게 켜켜이 쌓아온 나의 시간들에 대한 예의였다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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