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는 장보기를 마치고 짐을 차로 옮긴 후 꼭 카트를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내가 본 기억으론 한 번도 빠짐없이 그렇게 하신다. 엄마는 말했다. “너가 전에 왜 그 00 마켓에서 알바했을 때, 주차장에 카트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너무 싫다고 그랬잖아. 그 얘기 듣고부턴 꼭 돌려놓으려고 하지. 남 일 같지 않아서…” 난 해놓고도 까먹은 얘길 엄마는 20년 넘게 기억하는 중이시다.
이번 여름에 미국에 오실까 한다며 괜찮은지 물어보셨는데 여름에 집을 레노베이션하고 싶은 욕심에 힘들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아이들 방 위치도 바꾸고 이래저래 일들이 있어 와 계시기 불편할 거 같다고. ‘내년에 가면 되지~ 신경 쓰지 마 ‘라고 하셨지만, 내가 작년에 ’ 한국에 갈까 해 ‘라고 했을 때 ’그럼~ 우리야 언제든지 환영이지’라고 하셨던 엄마가 겹쳐지며 울적해졌다.
2.
정작 레노베이션을 맡길까 생각했던 분은 집에 와 보시고 견적을 내서 보내주겠단 말만 남긴 채 3주째 연락이 없다. 여기서 이런 일들은 다반사라지만, 그래서 다시 연락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왔던 일인 만큼 그 어떤 답도 내가 먼저 재촉해 듣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을 알까.
3.
기다리는 사이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8년째 타고 있는 차가 내일모레 하는 꼴이 되었다. 목돈이 들어가는 다른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집 고쳐야 하는데. 집 고칠 돈은 있으면서 당장 바꿔야 하는 차는 미룬다는 게 말이 되냐며 너무 쉽게 말하는 남편의 얼굴이 너무 얄밉고 짜증 나서 소리를 있는 데로 지르다 몸 안에 있던 모든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어린애처럼 엉엉 목 놓아 울고 나면 좀 나아질 거 같은데 우는 것도 힘이 필요한 일이었다.
4.
두 아이가 탄 유모차를 기울게 들어 올려 눈앞에 닿을 듯 말 듯하던 나뭇잎을 만지게 해 주던 아빠.
학교 문 앞에서 피고 있던 담배를 손에 낀 채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아이를 들여보내던 주름 가득한 엄마의 손.
고운 빛을 띤 히잡을 쓰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아이를 사진에 담던 아빠.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 쑥스러우면서도 설렘을 감출 수 없던 아이의 표정.
출근길 마주친 쭈뼛쭈뼛 삐쳐 나오던 사랑의 언어들.
5.
쓰레기와 차와 빌딩으로 가득 찬 삭막한 정글 같은 이 동네에도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이 왔다.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 방학을 한다. 정확한 끝과 시작이 정해진 것에는 아쉬움과 설렘이라는 호사가 허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