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25

by 오롯

두 달 남짓 휴가가 끝났다. 이번 주말을 보내고 나면 다시 월요일부터 출근이다. 또 돌아올 여름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보내는 날들이 시작될 텐데, 내년 여름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를 거 같아 해맑게 무턱대고 기다리기만은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벌써부터 그게 아쉽다.


여름 내내 무엇을 했더라.


다섯 권의 새로운 책과 두 권의 읽었던 책을 다시 완독 했고, 두 권의 책은 중도에 그만두는 어려운 결정을 과감히 했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은 읽다 만 채 계속 미루다 실수로 도서관에 리턴해 버렸지만 굳이 다시 빌려오지 않았다. 다시 읽은 책 중 한 권은 괜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후회했지만 결국 다 읽었고, 다른 한 권은 끝나가는 게 아쉬워 마지막 페이지들을 아껴가며 읽었고 끝나자마자 바로 또 읽을까 고민했다.


집을 고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런 큰 계획도 세우지 않았었는데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벼르고 벼르던 gutter를 청소하고 다람쥐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막는 공사를 했으며, 구닥다리란 말이 딱 어울리는 현관문과 편지함을 바꿔 달았다. 간단한 일 같지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아이들의 방을 드디어 나누기로 하면서 결국 우리 방을 아래층 손님방으로 옮겨야 했고, 이제는 많이 안 쓰게 된 놀이방을 손님방으로 바꾸었다. 때가 많이 타고, 고장 난 블라인드들도 다 바꿔 달았다. 이 역시 생각보다 시간과 에너지 (또, 돈)을 많이 잡아먹었는데 덕분에 큰 공사를 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 생길 정도였다. 큰 아이의 방과 놀이방에 있던 많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나온 큰 쓰레기 봉지 열 개에 담긴 것들을 보고 있자니 아이의 한 시절이 일단락되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이렇게 또 크고, 나는 그만큼 또 늙는구나.


매 년 여름 시작 무렵 다녀오는 단기 선교 여행 외엔 계획했던 떠남은 하나도 없었지만, 꽤 즉흥적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다녀왔고 기대는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불어 중심의 도시였어서 놀랐고, 꽤 좋았다. 다른 일정들로 피곤해진 아이들 때문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 혼자라도 다녀온 도서관은 차라리 혼자 오길 잘했다 싶게 불어책들만 가득해서 아이들이 같이 안 온 것이 그렇게 아쉽지 않아 다행이었다. 도서관 안에 중고책 서점이 작게 있었는데 (도서관 안에 서점이라니!) 불어책들로 가득할 거라 생각해서 들어가 볼 생각도 안 하다가 갑자기 그림책을 사면 좋겠다 싶어 열심히 뒤졌지만 맘에 드는 것을 못 찾아 아쉬워하던 중, 아 그럼 그냥 ‘어린 왕자’ 책이라도 했는데 딱 한 권 진열된 Le Petit Prince를 발견하고 소리 지를 뻔했다. 오늘은 빙고(!) 게임을 하러 가는 날이라 마감을 서두르는 중이라고 불어 악센트 섞인 영어로 말하며 젊은 여직원 분이 계산을 도와줬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걸어 돌아오는 길은 적당히 어느 동네 길을 걷는 느낌이었어서 런던에서 혼자 걷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마음의 방을 하나 더 우연찮게 얻었다.


아, 꽤 근처이면서도 대학생 때 이후 20년도 넘게 가 보지 않았던 카페에 아이들과 함께 갔던 것도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엄마는 언제 마지막에 왔었는데 하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20년도 더 됐어라고 대답하면서 인제 정말 그런 일들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여름동안 일기는 한 번도 쓰지 않았으며 그래도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은 써야지라고 했던 생각을 실현 중이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쓸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또 언제 쓸지 모르니. 지우지 않고 그냥 둬야지. 많은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끝무렵, 위로가 되는 것은 손님방으로 옮겨 놓은 화분에서 일 년 넘게 멈쳐있던 줄기 끝 몽우리에서 새 잎이 돋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거다. 반가워. 고마워. 수고 많았어.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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