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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Mar 28. 2022

우리 모두가 잃은 것

근 이년 간 코로나 19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계속해서 노출돼 있다 보니 오히려 둔감해졌던 거 같다. 너무나 큰일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다 보니 오히려 얼마나 큰 일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지경이 된 것이다. 다행히 나와 가족들, 가까운 지인들 중에선 코로나로 크게 아팠다거나 경제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더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이 시기로 극심한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가고 있을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기에 '다행히'라는 단어는 쓰면서도 너무 조심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팬대믹 초기 lockdown이 시작되었을 때, 병원 소속인 나는 essential worker로 분류되어 치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deployment 되는 등 바로 전날 출근할 때는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갑자기 집에만 있게 된 사람들에 비해 어찌 됐거나 매일 출근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남편 덕분에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직장을 관둬야 하는 급박한 상황까진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전보다 훨씬 더 빡빡하고 불안정한 일상이 이어졌던 건 맞지만 팬대믹 이전과 이후의 루틴이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아서였을까. 한 번씩 '도대체 언제까지'라는 순간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매일같이 이런저런 기가 막힌 소식들을 접하면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아픔들에 대해선 오히려 마비돼버리고 마는 듯한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 때문인지, 그 누구에게도 실지로는 도움이 되진 못하는 거 같은 곳으로 출근을 위한 출근을 하는 듯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자괴감과 싸우랴 낮엔 아이들과 있느라 제대로 근무를 하지 못한 남편과 퇴근하자마자 육아 바통 터치 릴레이를 이어가랴 내 눈앞에 닥친 불 끄기에 급급했던 때문인지 코로나로 인한 불편함만 인지하기에 바빴지 잃어버리게 된 것에 대해선 크게 체감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러던 얼마 전 아이의 학교 과제를 위해 예전 사진들을 찾아보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공을 차며 놀던 사진을 발견했다. 엄마의 표정이 재밌게 포착된 사진이었기에 엄마한테 문자로 다시 보내줬다. 기억나냐며 서로 낄낄거리다 엄마가 보낸 마지막 말에 나는 가슴이 싸해졌다. '저때만 해도 엄마가 젊었다. 마스크도 안 쓴 시절~ 좋은 때였네. 그리워라'. 정말이었다. 엄마의 '그립다'는 그냥 단순히 저 때 재밌었는데, 나중에 또 하자의 수준이 아닌 이젠 정말 찾아올 수 없는 영영 잃어버려진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것은 정말 다시 시간이 생긴다고 해도, 좋은 날씨가 찾아온다고 해도, 돈이 더 많이 생긴다고 해도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공을 차며 뛰어다닐 만큼 다리에 힘이 많지 않고, 나의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잔디밭에서 공을 차는 것이 그토록 재밌게 여겨지던 나이에 머무르지 않을 거이기에... 물리적 거리로 원래 자주 뵙지 못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 동안에도 제약이 너무 많았다.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밖에 뵙지 못해서인지 매 년 뵐 때마다 눈에 띄게 나이가 드시는 게 보이고, 전과는 다르게 힘들어하시는 일들이 생기는 걸 본다. 나에게도 보이는데 엄마는 더욱더 느끼실 것이다. 실질적으로 작년에 할 수 있던 일들을 올해는 못 하게 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그걸 알고 있는데, 매 년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는데, 기약 없이 아무것도 못 한 채 지나가야 했던 코로나의 시간이 엄마에겐 어떤 시간이었을까.


유치원을 비대면으로 시작해 결국엔 정상적으로 다녀보지 못하고 지나간 딸아이를 애석해하느라, 비대면 수업을 너무 싫어하는데  외엔 방법이 없던  아이를 안타까워하느라, 육아와 직장에 허덕이느라 나는 인제서야 엄마가 느꼈을 상실감에 가슴이 짠하다. 그리고 분명 내가 차마 가늠할  조차 없는  상실감으로 아팠을, 아픈, 아플 사람들도 매우 많을 것이다. 나는 서로의 상실감의 크기를 비교하자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순간에만 함께   있었던 시간들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다정해도, 조금  친절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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