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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May 14. 2022

그런 게 뭐가 중요해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남편과 얘기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정확히 똑같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를 품고 있다. 화를 낸다거나 비아냥 거리는 말투는 아니고 정말 궁금하거나 약간 의아해하는 말투이다. 주로 내가 없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를 나에게 전해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종종 질문을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남편의 대답은 잘 기억이 안 난다거나 ‘그건 안 물어봤는데’이다. 그리고 그런 게 왜 중요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그 말을 건넸을 때 그 사람의 말투가,  그 사람의 표정이, 어떡하다 그 얘기가 나온 건지, 남편이 먼저 물어본 건지, 상대방이 먼저 시작한 건지, 그 말을 꺼내기 전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그 부분을 표현할 때 정확히 어떤 단어를 쓴 것인지. 생각해보니 지인들에게서 ‘너는 그런 것까지 어떻게 기억해?’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궁금하고, 그런 것들을 잘 기억하는 듯하다.


남편은 말한다. 자기는 상대방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경위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보다는 대화의 흐름과 분위기, 주된 내용과  결론을 기억한다고. 그러고 보니 나는 공부할 때도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키포인트들을 잘 캐치해 그 위주로 공부하기보다는 시험에 안 나올 거 까지 몽땅 외워버리려고 노력하느라 시간을 낭비한 적도 많았는데 다 연관된 걸까.


자잘한 것들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나의 불같은 화에 상대방이 말문을 열기 전 0.1초 멈칫하는 순간이라던가,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느라 입김을 후후 불며 훌쩍거리는 상대방의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라던가, 긴장해서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나의 차가운 시선에 잠시 흔들리눈동자같이,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드는 순간들은 그런 사소한 작은 것들이기에 나는 그냥 내가 볼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해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더 찬찬히 살피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 적으니 내가 마치 엄청 다정하고 세세하게 챙기는 사람 같지만, 매년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는 것도,  정작 나는 매번 까먹는 나의 MBTI 테스트 결과 따위를 기억하는 것도 나보다는 남편이니 다정하고 세심한 것은 또 다른 영역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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