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 Aug 02. 2022

29일간의 기록

07.01.22-07.29.22

역시나 조금은 부끄러운 내용의 일기들이 29개의 다른 글들로 자리를 꿰차고 올라와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하나의 글로 묶기로 했다. 개 중 몇 개는 생략 하였다. 


07.01.22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나의 방학도 시작되었다. 삼 년 전 아이들의 긴 여름 방학을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직장으로 옮겼다. 우리가 함께 하는 세 번째 여름이다. 정확히 58일 후 다시 출근이다.


계획을 세웠다.

1. 일기를 쓴다. 아무리 짧더라도. 별 내용이 없더라도.

2. 매일 10분이라도 운동다운 운동을 한다.

3.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무언가(재밌는 경험)을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버린다.

4. 아침을 아이들과 함께 준비한다.

5. 하루 중 한 끼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먹게 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린다.

6. 계획에 갇혀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계획 세우는 것을 그만둔다.


사실 1번만 지켜도 다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 깨달은 사랑은. 아이가 매니큐어를 자기가 바르겠다며 엉망진창으로 발라놓아도 (그래서 결국 내가 다시 지우고 해줘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일지라도) 온화하게 참고 기다려주는 것. 너무 잘했네 라는 칭찬도 곁들여주는 것.


07.02.22

맙소사.

코로나에 걸렸다.

어제 세운 계획  유일하게 지킬  있는 것이 둘째 날부터 매일 일기 쓰기 뿐이라니.


07.03.22

감기에 걸린 거 겉은 증상인데도 격리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 정말이지 몹쓸 병이다.


엄마가 아플 때와 아빠가 아플 때의 집의 양상은 너무 다르다. 내가 아파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아이들은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무얼 할지 잘 몰라한다. 그래도 이젠 꽤 커서 평소에 내가 계속해서 같이 뭔가를 해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도 잘 놀고, 같이 어울려서도 잘 놀곤 했었는데 내가 아예 사라지자 심심하다고 아우성이다. 같이 놀아주는 역할에선 사라진 지 나보다도 더 오래된 남편은 막상 해주고 싶어도 무얼 해주어야 할지 몰라한다. 아이도 나랑 하던 놀이를 아빠에겐 같이 하자고 묻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에도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것과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구분되어 있나 보다. 내가 없다고 해서 식사가 해결 안 되거나 하는 집이 아닌데도, 심지어 내가 있어도 평소 출근할 땐 남편이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주는데도. 놀이에 있어선 내가 한 수 위인가. 그저 몸이 아프자 아빠보단 엄마가 더 생각나는 나의 마음과 비슷한 걸까.


07.05.22

이젠 정말 간혹 나오는 잔기침 이외엔 몸이 너무 멀쩡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역시나 아직은 양성이라고 나왔다.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수백 번도 넘게 코비드에 걸린 후 90일까진 false positive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5일 격리 후 대부분의 증상이 사라지면 격리 해제하고 출근할 수 있다고 대답해놓고선 막상 그 대답을 나에게 적용하려니, 정말 내일부턴 가족들을 마주해도 될까 의문이다. 역시 내가 당해보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야 잘 모르는 채 너무 쉽게 말했던 내 모습이 후회된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도, 어떤 식의 통증을 느끼는지 물을 때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들이 대답하는 통증이 실질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체감하지 못했었다. 내가 직접 신경치료를 받게 되기 전까진. 사람들은 종종 묻곤 한다. ‘어머, 치과 의사도 충치가 있어요?’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질문이 아님에도 초반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르는 죄책감에 휩싸였는데 지금은 그냥 웃어넘긴다. 그럼요. 저도 23살이 될 때까진 제가 치과의사가 될지 몰랐는 걸요. 저도 부모님께 용돈 받자마자 아파트 앞 구멍가게로 달려가 츄파춥스를 입에 물던, 이는 닦고 자는 거냐며 매 번 잔소리를 듣던 아이였는 걸요. 그렇게 어린 시절 얻었던 충치 덕에 치료했던 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이 죽었고 결국 신경치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난 그제야 아, sharp pain은 이런 거구나, lingering pain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며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고통을 실체화할 수 있었다. 그제야 환자들의 고통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일기를 시작한 건, 글쓰기를 늦추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까지 올린 글들의 대부분은 여러 번 곱씹어 보고 올린 글들이었다. 곱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게 뭐라고’라는 마음이 같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럴수로 다음 글을 쓰기까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었고,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짧은 호흡의 글들도 뱉어내고 싶었다. 마침 긴 휴가가 시작되었고 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5일째 되는 지금은 여태까지 쓴 글들이 약간 낯설다. 나인 거 같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쓴 거 같기도 하다. 너무 성의 없이 쌀을 씻다 쌀들을 물과 함께 쏟아낸 느낌이기도 하고, 너무 구멍이 큰 체망으로 걸러낼 것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느낌이기도 하다. 결국 난 조금 후회하면서도 중간에 그만두는 걸 잘 못 참는 성격 때문에 계속하게 될까. 언젠가 아는 동생이 그랬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다고. 죽이 되더라도 일단 먹을 수는 있으니. 그 아이는 현자였던가.


07.07.22

2세들이 영어로 말하다가도 꼭 한국말 단어로 말하는 것들이 있다. 엄마, 아빠 같은 호칭이라던가, ‘my 할므니 loves it’ 같이 문장 중간에 갑자기 한국말을 섞어 넣는 식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우리 아이들도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말할 땐 ‘오빠, 영어 영어 영어…’ 이렇게 말하는 둘째 아이가 영어로 쓸 땐 ‘Ask daddy and brother’라고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게 너무 재밌다. 보통 완전 미국식이었다면 brother 대신에 당연히 이름을 불렀겠지만 워낙 오빠라는 호칭에 익숙해서일까. 친오빠가 아닌 주위의 다른 모든 오빠들에겐 당당하게 이름을 불러젖힌다.

그 외에도 모기 (I have a 모기 bite), 밥 (can I get more 밥?), 김 (Can I have 김 with it?), 이불 (You have my 이불!), 계란, 만두, 꿀 등등이 있다. 난 그렇게 말하는 게 귀여워서 그냥 두는 편인데 어느 날은 설마 영어로 모르는 건 아니겠지 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럼 왜 그렇게 말해?라고 하니 자신들이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을 인제야 눈치챈 듯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그런다고 했다. 그게 더 빠르고 쉬운 느낌이라고 했다. 아무 이유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가장 특별한 이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어는 그저 뜻만이 아니라 그 단어에 연결돼 있는 고유의 정서와 경험들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마 아이들과 모기, 밥, 김, 이불, 계란, 만두, 꿀 등등이 관련된 특별한 경험들을 공유하나 보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07.08.22

언니가 방문했다. 몸이 나아진 뒤 언니가 오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언니랑 아이들과 함께 티 룸에 다녀왔다. 티 파티 놀이를 즐기는 은이가 좋아할 거 같아 전부터 눈여겨본 곳이었다. 은이는 한 껏 들떠 드레스를 고르고 구두에 핸드백까지 챙겨 들었다. 주문을 마친 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시킨 핫 코코에 마시멜로가 딸려 나올지에 대해 의논했다. 에프터눈 티 세트와 함께 우리가 고른 차가 나왔고, 아쉽게도 아이들의 핫 코코에 마시멜로는 없었다. 얼마 뒤, 옆 테이블에 엄마와 딸이 앉았는데 그 아이도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듣고는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통한다더니…

세트에 딸려 나온 음식은 가격에 비해 너무 평범했지만, 다행히 아이들 취향에 맞혀진 샌드위치들도 있어서 모두의 허기를 채우기엔 충분했고, 예쁜 찻잔 세트와 디저트들은 정말 티 파티를 하는 느낌을 주어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오는 길 나도 모르게  ‘아, 커피 마시고 싶다’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언니가 ‘어, 나도’ 라며 맞장구치는 바람에 마주 보며 웃고 말았다. 너무 좋았지만, 한 번으로 충분했던 경험.


07.09.22

우리 집 부엌 싱크대 앞 창문틀 밑에는 거미가 산다. 내가 아침에 처음으로 싱크대 앞에 설 때만, 그러니까 하루 중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를 놀라게 한다. 나도 흠칫 놀라고, 거미도 ‘앗, 깜짝이야’를 있는 힘껏 몸으로 외치며 달아난다. 그는 바닥을 기어 달아나는 것이 아니고, 창문틀 밑과 베이킹 소다 통 사이에 자신이 이어놓은 줄을 타고 찍- 달아난다. 베이킹 소다 통에서 창문 쪽으로. 매번 똑같은 모양새로, 매번 똑같은 경로로. 평소 벌레라면 치를 떠는 내가 이상하게 거미한텐 관대한 편인데, 심지어 이 거미에겐 이상하게 친근함마저 느낀다. 매일매일 서로를 놀래키면서도 잊어버리고, 그다음 날이면 다시 놀래는 사이가 우스우면서도 정이 쌓였다고 해야 하나. 안녕, 거미 씨. 항상 그 자리에서 나의 베이킹 소다 통 씨를 향해 집을 짓는 이유가 뭐야. 물도 많이 튈 테고, 내가 언제 그 통을 확 집어 들지도 모르잖아. 내가 모르는 척해 주는 동안 어서 다른 곳에 이사 가는 것이 더 오래 사는 일일 텐데 말이야. 아마도 머잖아 무의식적으로 베이킹 소다 통을 확 들어 올린 후 ‘아 맞다, 거미’ 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진 우리는 계속 서로를 놀라게 하겠지


07.10.22

내일은 여행을 간다. 언니와 아이들만 데리고. 짐은 물론 아직 안 쌌다. 그래서 마음이 매우 급하다. 항상 두 아이의 짐을 싸느라 지쳐버려 결국 내 짐을 쌀 차례가 되면 대충 마무리한다. 그래서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아이들 짐은 너무 많이 싸와서, 나의 짐은 너무 빼먹고 와서 후회한다. 결국 이번에도 많이 다르지 않을 듯하다.


07.11.22

무사히 도착했다생각보다 오래 걸렸고생각보다 엄한 곳에 숙소가 있었지만아이들은 생각보다 긴 시간  버텨주었고, 생각보다 숙소를 좋아했다. 그럼 됐지. 저녁을 먹으러 중심가로 나갔는데 한 골목에서 어떤 홈리스 청년이 너무나도 정중한 목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have a good night이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단이는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더니 웬일로 직접 돈을 건네주러 갔고, 그 사람이 thank you라고 하자 you’re welcome, bye 하고 돌아왔다. 그러자 그 사람은 have a good night이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들의 대화는 어딘가 상황과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서로에게 격식을 갖추고 있었고 다정하기까지 했기에 어쩐지 웃음이 나면서도 조금은 애잔했다. 다리 수술을 받아 홈리스가 되었다는 그 청년이 빨리 회복되어 점잖은 목소리를 뽐내며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길.


07.12.22

오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잠시 쉬러 돌아왔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난 이런 순간을 은근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쉬어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이기에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미 생각했던 일정은 마쳤고 남은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려니 조금 아까웠던 터라 노을이라도 보러 나가자고 하던 참이었는데 후두 두두둑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 거다. 비가 원망스럽다기 보단 나가 있는 동안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조금은 피곤했나 보다. 

등대도 보았고 바다도 보았다. 랍스터 롤과 유명하다는 도넛도 먹었고 젤라토도 사 먹었다.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파도 소리도 듣고, 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들었다. 바다와 나무들이 공존하는 이곳을 참 좋아한다. 분명 집과 더 가까운 곳에도 있을지 모르는 장소이지만, 이 년 전 처음 왔을 때 언니와 아이들과 함께 무작정 떠나왔다 만난 곳이었기에 더 특별하다. 이미 유명한 곳이지만 나에게 비로소 ‘발견’된 듯한 각별한 느낌. 두 번째로 온 지금은 또 와서 설레는 마음과 처음처럼 좋지 않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공존한다. 결국 그 두려운 마음이란 것은 이미 좋아져 버린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 드는 마음이기에 난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계속 좋아할 것이란 걸 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일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비밀스러운 맛을 지닌 도넛이라던가, 가격 대비 너무 훌륭한 퀄리티의 탱글탱글한 랍스터 롤, 혹은 어딘가에서도 볼 수 없던 황홀한 광경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함께’ 떠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 너무 좋다’ 말고는 다른 생각이 안 드는 순간이 몇 번만 있어도 이미 그곳은 충분히 특별한 곳이 되는 것이다.


07.13.22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이다. 숙소를 옮겨 지난번 여행 때 꼭 다시 와야지 다짐했던 곳으로 왔다. 기억했던 것보다 작은 느낌이었는데 밀물과 썰물 때문일까. 그래도, 여전히 좋았다. 모래 해변이 아닌 돌 해변인데 그래서 더 좋아했던 곳이다. 모래를 쓸고 내려가는 파도 소리와 돌들을 쓸고 내려가는 파도 소리가 다르다고 느낀다면 과장일까. 돌들이 구르며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같이 들리는 거 같아 그 소리가 너무 좋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깎여 각자 다른 모양새와 색깔로 자리 잡은 돌들을 살펴보는 것도 별미다.

너무 욕심을 부려 일정을 잡지 않으면 아이들과도 즐겁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다. 갈 수 있는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적은 편이고 쉬어가는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만 미리 감안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한결 만족스럽고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예전엔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이건 해보아야지 하는 욕심을 부리던 때가 있었는데 많은 경우 그건 내 욕심이었고 아이들의 마음은 나와 다른 때가 많았다. 아이들도 재미없었고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속상해지곤 했다. 아이들은 의외의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재밌어한다. 때로는 그저 새로운 곳에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나의 할 일을 다 한 셈일 때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 은이가 읽는 책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 Mckenzie인데 발음이 어려운지 자꾸 Magazine이라고 한다. 큭, 귀여운 녀석.


07.14.22

집이다. 8시간 넘게 운전해서 무사히 돌아왔다. 아아- 피곤해.

오늘 아침에는 전 날 일기에 아이들과 여행하는 것이 할 만하다고 말했던 것을 다 취소하고 싶을 만큼 짜증이 났었다. 아이들이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탓에 매섭게 소리를 질러서 단이를 결국 울리고 말았다. 아이들도 집을 떠나온 지 며칠째 돼가자 피로가 쌓였던 거 같고 무엇보다도 우린 배가 고팠던 거 같다. 허기를 채우고 난 뒤, 벼르고 별렀던 서점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마음에 평온을 되찾는가 싶더니, 서점 안 카페에서 시킨 라테를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왜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던 의구심이 올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으로 바뀌었다. 아이들도 금세 신이 나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여행지에서 사는 책이 좋은 추억이자 기념품이 될 수 있다고 추천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은 서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차라는 공간에 갇혀 싫으나 좋으나 함께 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인 경우엔 좋은 점이 더 많다. 단이가 자기는 모차르트보다 베토벤을 더 좋아하는 데 그 이유는 베토벤이 베지터블 (vegetalbe)과 발음이 더 비슷해서이고 (응?), 언니가 좋아하는 가수 잔나비의 뜻은 나비의 종류가 아니라 (응?) 원숭이를 뜻하는 우리말이라는 것도 다 오늘 차 안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07.15.22

언니는 나에게,

나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가공되지 않은 단어들로 쏟아낼 수 있는 지구 상의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내일이면 언니가 떠난다. 


07.16.22

언니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노래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먹먹했다. 언니가 있었던 시간은 고작 10일인데 남편과 아이들하고만 덩그러니 남겨진 일상이 낯설다.

몇 번이고 I miss my sister라고 말하는 나에게 은이는 Oh, no! You caught 지*이모 disease라고 말해 나를 웃게 했다. 맞는 거 같아. 오늘까지만 앓고 내일부턴 씩씩한 엄마로 컴백할게. 언니도 혼자라고 느끼지 않기를.


07.17.22

단이가 내일부터 새로운 운동을 배우러 가는데 내가 더 긴장된다. 아이의 처음에 내가 더 긴장하는 이 쫄보 마음은 언제쯤 괜찮아지는 걸까. 예전에 나는 못 갔던 학교 행사에 참석한 단이의 친구 엄마가 단이와 친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다. 사진 속에 활짝 웃고 있는 단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난 적이 있다. 내가 없는 공간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잘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고마와서, 너무 안심되어서 울며 웃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맹수와도 싸워 낼 수 있을 거 같은 용기가 나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오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졸지에 세상 최고 겁쟁이가 되고 만다.


07.18.22

단이의 테니스 레슨 첫날.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를 내려주고 은이를 데리고 근처의 도서관에 갔다.

테니스를 배우는 센터는 소위 학군이 좋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학구열이 높은 편인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다. 내가 이곳으로 단이를 보내는 이유는 수소문 끝에  유명한 곳을 찾아냈기 때문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부지런한 능력은 없고, 집 근처 테니스 배울 수 있는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상위에 뜨는 곳들 중 하나를 골랐다.  난 이 좋은 동네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근처에, 굳이 따지자면 학군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의 정서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적당히 편리하고 적당히 어울리는 곳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더 부유한 (객관적인 면에서) 동네에 들리게 되는 경우, 나도 이런 곳으로 꼭 이사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간절히 든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무리하더라도 그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채감이 들곤 한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이 먼저 들지 않을까,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게으른 엄마인가 하는 의문도 항상 따라온다.  

오늘도 또 비슷한 생각을 하며 도서관에 들어갔다. 은이와 책도 고르고, 같이 읽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앞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아이에게 눈이 갔다. 중학생 정도 됐을까. 고등학생일지도 모르겠는 남자아이였는데 춥지도 않은 곳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채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엔 문제지처럼 보이는 책이 펼쳐져 있고 연필도 보였지만 내가 세 시간 가까이 머무는 동안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그 연필을 잡지 않았다. 핸드폰으로는 게임을 하는 거 같았다. 중간중간 내려놓는 거 같다가도 일 분도 안되서는 다시 집어 들었다. 꽤 긴 시간 관찰한 결과 아이는 사실 게임을 그렇게 재밌어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그저 공부가 하기 싫었던 거 같다. 처음엔 '저 녀석, 엄마에겐 도서관 가서 공부한다고 하고 나왔겠지. 근데  저렇게 게임만 하고 있네' 라며 그 아이의 엄마로 빙의해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점점 그 아이가 딱한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공부도 안 할 거 차라리 집에서 큰 화면으로 제대로 하거나 아예 딴 거라도 하지. 눈치 보여서 나오긴 했는데 결국 여기서 후드 뒤집어쓰고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고 있다니 (오늘 몇 시간 본 그 아이의 모습으로 그 아이의 평소 마음이나 부모와의 관계를 감히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내 아이가 아니라고 속 편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아이의 몇 년 후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어서 더 그랬다. 사실 공부라는 거 다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좋은 환경에 데려가 주어도 자기가 하기 싫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아닌데도 공부하는 척하며 나를 속이는 관계가 아닌 아이는 그것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있고, 나는 그걸 잘 받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는 거라면 그런 모습이길 바란다. 당장 테니스부터 단이가 나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07.21.22

은이가 웬일인지 오빠 테니스 레슨 데려다주는 길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단이는 웬일인지 레슨 시간 동안 자기를 보고 있어도 된다고 했다. 보통 자기를 지켜보며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는데. 한 시간 정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와 은이와 함께 였다면 오래 머물기 힘들었을 카페에 갔다.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은 것을 보고 문득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핸드폰을 보지 않고 있으면 할 수 있는 혹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궁금해졌다. 한 시간 알람을 맞춘 뒤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1 스몰 라테

1 스콘

소설책 34 페이지

4 카톡 메시지

1 광고 이메일


이상이 한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확인해본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그동안 내가 놓친 정보 (메시지와 이메일)의 양은 정말 미미했고, 책을 읽은 양 또한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난 정말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인 거 같다. 책을 읽으며 장면을 주로 상상하는 편인데, 황선우 작가님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은 영화보다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나만의 페이스대로 멈춰가며, 장면을 반복하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영화보단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하는 내용 같은 경우, 책은 나의 상상 속에서 장면의 강약을 조절하면서도 메세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영화는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내 눈 바로 앞에 펼쳐놓기에 그 잔상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힌다. 아무튼, 중간중간 방해가 많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던 걸로.


07.22.22

단이의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일주일간의 테니스 캠프가 끝났다. 단이는 웬일인지 좀 쉬었다가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 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응? 오늘 세 시간 내내 머무르며 지켜본 결과 아이가 젤 신나 보이던 시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공들을 긴 통처럼 생긴 기구로 주워 담는 때였던 거 같던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숨겨진 재미가 있었던 거니? 그, 그래. 한 번 더 해 봐. 건투를 빌어, 아들!

어쨌든 내일은 늦잠 잘 수 있어 너무 좋다.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이 잘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부담 없이 늦게까지 깨어 있을 수 있다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막상 그렇게 늦게까지 깨 있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된다는 가능성에서 오는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신나긴 마찬가지다.

은이는 약간, 아니 많이 덤벙대는 편이라 잘 다치기도 하고 뭔가를 엎기도 잘하고, 옷에도 잘 묻힌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면서 딸기를 먹고 있었는데 악! 하는 소리에 쳐다보니 먹던 딸기를 떨켜서 책의 한 귀퉁이를 살짝 물들였다. 천만 다행히 아주 조금이었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와중, 또 한 번의 ‘악!’

‘왜?’ 하고 돌아보니 자기 흰색 티셔츠 한가운데 빨갛게 딸기물을 들여놓고는 배시시 웃으면서 ‘well, at least we don’t have to return this one (그래도 다행히 이 옷은 안 돌려줘도 되잖아)’라고 말한다. 초긍정 아이, 우리 딸. 그래. 네 옷은 그냥 엄마가 빨면 되지. 넌 좋겠다. 빨래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저녁을 해 먹이고, 뒷정리를 하고 아이들이 다른 거에 한 눈 팔려 있는 동안 냉큼 버블티 아이스크림 바를 하나 물고 방으로 쏙 들어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이 순간만큼은 언제 들려올지 모르는 ‘엄마’ 소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급박한 마감일처럼 느껴진다.


07.23.22

바다에 다녀왔다. 이번엔 남편도 함께. 이글거리는 더위에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 보통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곳인데 두 시간을 꼬박 채우고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빼곡히 모래사장을 채운 사람들을 보고 남편은 ‘우와,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봐. 꼭 동해에 온 거 같아’라고 했다. 바다 내음보다는 선크림 향이 더 먼저 코를 찌를 정도였다. 그래도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모든 더위가 사라졌다. 다들 이 맛에 왔겠지.

나는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에 대해 주위의 다른 (한국) 엄마들에 비하면 꽤 겁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해수욕장 스타일의 바닷가는 남편 없이 선뜻 나서지 못한다. 이유는 파라솔을 꼽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바닷바람이 다소 센 해변에서 너무 얕게 꼽았는지 뽑혀 날아가는 파라솔을 잡으러 뛰어가는 사람들을 본 뒤론 나에게도 왠지 그런 일이 일어날 거 같은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아이 둘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 날아가는 파라솔을 잡으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뛰어가는 내 모습이 상상된 거다. 다소 어이없는 이유이지만 꽤나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두려움이었기에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다만큼은 남편과 항상 함께 왔다. 그런데 오늘 이후 나는 인제 혼자서도 올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파라솔을 잘 꼽는 방법을 터득했다기보단, 파라솔을 포기하면 될 거 같다. 보아하니 어차피 아이들도 파라솔 밑에 앉아 있는 시간은 별로 없고, 나 역시 파라솔 밑에 고즈넉이 앉아 있을 겨를이 없을 거 같다. 물론 남편은 파라솔보다 훨씬 소중하지만, 남편은 바쁠 때가 많으므로 시간을 맞추기 힘들까 봐 하는 말이다.


07.24.22

빌려온 책들에 껴있던 도서관 receipt를 발견했는데 도서관 카드를 만든 후 지금까지 $18,879.75에 상당하는 책을 빌렸다고 나와있었다.  카드를 만든지는 10년 정도 되었고 큰 아이가 세 살 정도 됐을 때부터 책을 많이 빌려오기 시작했을까? 처음엔 내가 좋으면서 아이도 좋아할 거 같은 책을 한 두 권씩 사 모았었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어떤 분이 자기는 전집같이 책을 사주기보다는 도서관을 애용하고,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책이 생기면 그때 그 책들을 사 준다고 써 놓은 글을 읽고 나도 그렇게 하기 시작한 거 같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저 정도의 돈을 아낀 셈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대여하는 것이 출판업계에 혹은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긴 하다. 적어도 도서관에는 좋은 건가 보다. 체크할 생각조차 못해봤던 수치를 저렇게 빌릴 때마다 기분 좋아하세요! 하는 뉘앙스로 찍어주는 걸 보면. 도서관에 좋은 건 작가에겐 별로 안 좋은 걸까. 양쪽에 상호적으로 좋은 거면 좋겠는데 왠지 단순한 직감으론 아닐 거 같아 맘 놓고 뿌듯해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난 양쪽을 다 아끼니까.

어쨌든 도서관 덕에 아이들에게 부담 없이 이것저것 다른 느낌의 책들을 시도하게 할 수 있고, 나 또한 틈틈이 빌려오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읽고 있는 아이들 틈에 앉아 나도 책을 읽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더 크면 사라질 장면 같아서 함께 하면서도 그립다.

나 같은 경우엔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서 그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과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책을 구매한다. 아이들도 똑같은 책을 자꾸 빌려오려고 하는 경우 그 책을 사고 싶은지 물어본다. 보통 내가 아이들을 위해 소장하고 싶은 책과 아이들이 소장하고 싶은 책은 달라도 너무 달라 지갑이 선뜻 열리진 않지만, 책에서만큼은 가장 관대한 엄마가 되고 싶다.

어렸을 적 백화점에 갈 때면 아빠는 쇼핑의 마무리에 우리 삼 남매를 서점이 있는 층으로 데려가셔서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골라오게 하셨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나서는 것 같았던 설렘과 흥분되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우리에게 가서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전적으로 허락하셨던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거 같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빠도 포함하여 각자가 고른 책들을 가지고 만나 쪼르르 계산대 앞에 서서 고른 책들을 내려놓으면 아빠가 책값을 계산해주셨다. 아빠에게 단 한 번도 이 책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없다. 물론 기억은 시간이 지나 변형되기도 하고 잊혀져서 다른 모양으로 재구성되기도 하지만,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많고 많은 책들이 끝없이 눈앞에 펼쳐지던 순간에 느꼈던 희열과 내가 고른 책을 들고 나올 때 느꼈던 뿌듯함 만큼은 생생하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은 꼭 만들어 주고 싶은데. 이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


07.25.22

아이들의 방과 우리 방을 스위치 하는 대작업을 무려 10시간가량 걸쳐했다. 물론 중간에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었지만. 침대도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하고, 서랍장들도 옮기고, 책상들도, 책장들도 옮겼다. 더 힘들었던 건 오히려 자잘 자잘한 물건들. 버려도 옮겨도 계속 나오는 사소한 것들. 아직도 자리를 찾지 못한 작은 것들이 한쪽에 쌓여 있지만 오늘은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사소한 일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물건들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아무 집착이 없다. 안 쓰면 버려, 버릴 거야? 안 입으면 버려요. 입을 거예요? 를 스무 번은 말한 거 같다. 난 점점 버리며 미니멀리스트가 돼가고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비우는 만큼 채워 넣는 맥시멀리스트가 돼가는 거 같다.


07.27.22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있다. 작년 10월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길고 긴 프로세스가 있는데 한 스텝씩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이메일이 온다. 그런데 그 이메일이 오는 시간이 매우 이상하다. 여태까지 세 번에 걸쳐 업데이트 이메일이 왔었는데 수신된 시간이 모두 밤 11:48분이다. 이제나 저제나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며 하루가 끝을 향해 달릴수록 희미한 희망에 사로잡힌다. 혹시나 오늘 밤 희소식이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이다. 미처 그 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잠이 들 때면 새벽 두 세시쯤에 깨곤 하는데 비몽사몽 간에 핸드폰을 들고 이메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아무런 소식이 도착해 있지 않으면 절망감과 서운함에 잠이 달아난다. 한 시간 정도를 뒤척이며 낭비하고 나서야 다시 잠이 드는데 아침이 되면 선잠을 잔 탓에 일어나는 것이 참 힘들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그날 밤이 다가오면 속절없이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희망찬 아침이 아닌 희망찬 밤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이 빨리 끝나길.  11:48에서 11:49로 넘어가는 그 순간, 매일같이 매몰차게 내쳐지는 이 바람의 순간이 너무 고달프지 않게 그 끝은 부디 해피 엔딩이길. 오늘도 14분 남았다.


07.28.22

She had a vision of herself cooking sausage and eggs on a tiny outdoor stove for breakfast in the rain. Even if Jake did it instead, it still wouldn’t feel like a holiday. The unreliability of the British weather meant taking a whole car full of stuff, from sandals to hats and gloves. It was weird how you could go on holiday with three suitcasesof things, and return with six cases’ worth of laundry.’ - ‘The Messy Lives of Book People’ by Phaedra Patrick


내가 캠핑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 바로 저거였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 혹시 몰라 싸야 하는 짐이 너무 많고, 가서 먹을 거 까지 챙기다 보면 이사 가는 기분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정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이미 여행의 설렘을 능가한다. 다 사 먹으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 매 끼를 베이글만 사 먹더라도, 어차피 귀찮으니 세 끼 대신 두 끼만 먹더라도 상관없다. 그런 고민과 놀러 가서까지 해야 하는 요리, 설거지, 뒷정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아무리 남편이 같이 한다고 해도, 번갈아 가면서 한다고 해도 어차피 내가 정말 자유로울 수 없으니 진정한 휴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부엌을 꾸려 옮겨 다니는 여행을 하느니 그냥 난 집에 있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한 여행은 정말 간단하게 하루 한 끼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분량의 재료를 챙기거나, 아침이 제공되거나, 그냥 다 사 먹는 그런 여행이었다. 또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내가 계획하는 여행은 맛집 중심의 일정이 아니며, 가서 볼 수 있는 거, 할 수 있는 거 위주이다. 먹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위시 리스트는 가고 싶은 카페 정도. 시간에 맞추어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일정에 오히려 로드블락처럼 느껴진달까. 모든 일정이 맛집 위주인 친구는 이런 나의 말을 듣고 나랑은 여행 가기 힘들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내 맘 같진 않으니, 난 분명 또 트렁크가 넘치게 짐을 꾸렸다 풀을 것이고, 텐트에 들어가 몸을 뉘일 것이고, 아이들이 침낭에서 빠져나온 채 자는지 체크하느라 선 잠을 잘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보면 가끔 하는 캠핑도 나쁘진 않아라고 생각하겠지. 남편과 아이들이 캠핑을 그렇게까지 엄청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07.29.22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고 계시는 유희경 시인을 좋아한다. 그의 글과 특히 그의 낭독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 ‘어깨가 넓은 사람— O로부터’를 낭독하시는 걸 들으면서는 울 뻔했다. 이유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저 시에서 나오는 표현처럼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몽글몽글하고 먹먹함이 느껴져서였다. 위트 앤 시니컬은 나의 한국 방문 시 위시 리스트 1위이다. 서점 블로그에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witncynical)  매일 출근 일지가 올라오는데 7월 26에 올리신 글 중엔 이런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매일매일 글을 남겨놓을 수 있느냐,는 감탄에는 우쭐한 마음을 감출 수 없으나 사실 매일 아침 피가 마르는 심정입니다. 후다닥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에 불과하지요. 빈 창을 놓아두고 왼손 오른손이 어쩔 줄 몰라하면서 휴대전화 한 번 커피잔 한 번 괜히 연필을 굴려보고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나와는 전혀 급이 다른 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는 부분에서 감히 일말의 동질감을 느꼈고, 이런 분도 저렇게 힘들게 글을 풀어내시는데 나는 계획을 달성한다는 일념 하에 너무 쉽게 글을 토해내고 있었구나 싶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이제 그만할까 한다. 생각이 좀 고일 수 있게 뜸을 들이고, 마음을 달여 정성 들여 우려낸 글들을 쓰는 연습을 해봐야 할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