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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Apr 21. 2022

콜센터로 간 치과의사_2

그래서 나는 정말 한 달 만에 돌아왔을까?


감정의 소용돌이에 무참히 휘말렸던 그 반나절이 약간은 무색해질 정도로, 우려와는 달리 한 달 반이 지나 다시 원래의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거기서 겪는 일들을 글감으로 쓸 수 있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해서였을까. 오히려 조금은 아쉬웠을 정도로 그곳에서의 한 달 반은 별 탈 없이 흘러갔다.


우선 그곳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너무 평화로웠달까. 복잡한 도심과는 조금 떨어져 위치한 탓에 차들과 사람들로 엉켜있는 로컬 길들을 통과할 필요가 없어 출퇴근길은 더 단조로웠고, 넓은 주차장이 딸려 있었기에 주차자리를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빙빙 돌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서 원래 일하던 분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반기며 고마움을 표시했기에 괜히 보내졌다는 의심도 차차 거둘 수 있었다. 같이 파견 나온 동료들은 새로운 역할 놀이를 하듯 다소 들뜬 모습으로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들이 전에 해 봤는데 일은 곧 적응할 거라고 격려했다. 내심 오미크론에 걸릴 위험이 적은 곳으로 오게 된 것을 안심하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꼭 왜 우리가 가야 하는 거냐던 나의 물음에 그 일을 하는데 'some kind of clinical licensure'가 필요하며, 우리 말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파견될 거라는 디렉터의 대답을 미심쩍게 여겼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의 말이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마음은 조금 더 누그러질 수 있었다. 일단 정말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파견된 몇 명의 간호사, 의사들이 보였고 (여전히 우리 프로그램 소속이 제일 많았기에 어떤 이유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건지는 차치 하고라도), 우리는 급하게 구성된 Covid Hotline의 clinical team에 들어가는 거였기에 그 멤버들은 어느 직종이던 some kind of 의사/간호사 여야 했던 것이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만큼 가이드라인과 프로토콜은 매주 업데이트되었고, 우리의 업무는 그것을 잘 숙지한 뒤, 코로나와 관련해 전화하는 병원의 모든 직원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스크립트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경우였고, 복잡하거나 예외의 경우들에 대해선 문의할 수 있는 clinical advisor가 따로 있었다. 가파르게 급상승하는 확진자의 그래프 수치만큼 전화는 계속 빗발쳤지만,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상상했던 것만큼의 아수라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만난 적은 없어도 한 집단에 속해있다는 소속감 때문인지, 어쩌다 한 번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대체로 통화 중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기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많진 않았다.


기억나는 몇 가지 일들을 써보자면, 세상은 넓지만 그렇게 넓진 않아서, 내가 아는 사람의 전화를 받은 후 나인걸 알게 되면 상대방이 당황할까 봐 목소리 변조를 해야 하나 고민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고, 코비드 테스트 양성 결과가 나와서 전화했었는데 연결되지 않아 이제 증상도 없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일 안 나가고 집에 한 달 넘게 있는 중이라던 강심장을 가진 사람도 있었으며, 지인이 10일 격리기간을 가졌다는 사전 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본인도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10일 격리를 당당히 요구하던 사람도 있었다 (규정상 격리 기간은 처음엔 의무적으로 5일이 주어지고 그 뒤엔 증상에 따라 늘어나기도 했다). 통화를 시작할 땐 미친 듯이 기침을 토해내며 일을 나갈 수 없으니 격리 기간을 늘려달라고 한 뒤, 통화를 마칠 때쯤엔 너무나 밝고 청아한 목소리로 'Ok, thank you. Have a good one!' 하고 인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침 몇 번 했는데 교수님이 당장 가서 테스트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연구실에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에게 그런 권한이 있냐고, 자기가 연구실에 안 나가면 같은 조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니 자기는 일을 나가야 한다며, 자기는 먼지 알레르기지 코로나에 걸린 게 확실히 아니라며 항의하는 의대생도 있었다. 혹시 모르니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했을 땐, 그러다 양성이 나오면 연구실을 못 가지 않냐며 볼멘소리로 대꾸하다 본인도 자신이 하는 말의 딜레마를 알았는지 그냥 끊어버렸지만... 전화를 받는 팀원들이 바로 옆은 아니지만 같은 방에 앉아있고, 통화 내용을 다 기록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다른 동료 의사와 통화할 때 열이 있다고 말해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자, 테스트받기 싫었는지 바로 다시 전화해 나와 연결되자 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화기 건너편에 놓인 사람들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무턱 대며 비난하는 마음을 갖기엔, 상황과 실현의 정도는 다르지만 나 역시 같은 결의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했다.


한 번은, 전화를 시작하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화가 흐르지 않자 다짜고짜 내가 누구인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What is your title?

- I'm a...(지금 이 상황에 치과의사라는 대답은 너무 황당하잖아!)... doctor.

Awww, ok. Doctor, so...


똑같은 지침을 주는데도 갑자기 너무 유순해진 상대방의 말투에 속였다는 일말의 죄책감이 순간 날아갔지만, 통화를 끊고 나니 직분이 주는 권위에 태도를 돌변한 그 사람 모습 위에, 권위를 내세워 일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어 했던 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씁쓸한 마음이 남기도 했다.   


한 달 반 정도 지나자 수직으로 상승하던 확진자 수 그래프는 그만큼 빠르게 내려왔고, 나의 소소하게 파란만장했던 콜센터에서의 파견 근무도 끝났다. 수백 번도 되풀이하여 습관처럼 나오던, "Covid-19 OHS Hotline, how can I help you?"란 말도 이제 안 한다. 내가 정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하며 눈부신 성장까지는 모르겠지만, 콜센터의 직원분들도 나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모르는 듯 대했던 사실을 몸소 체험하며 느낄 수 있었으니 일말의 발전은 있었다고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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