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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Oct 01. 2022

사람을 낚는 제목

꽤 긴 시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으면서도 매일같이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통계'를 클릭해 보는 것이다. 새 글도 올리지 않으면서 그 수치를 매 번 확인해 보는 심리는 무엇일까. 히트곡 없는 가수가 밤 새 나도 모르는 일이 일어나 전에 발표했던 곡이 역주행하는 기적을 바라보는 마음일까.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어볼 만큼의 지난한 노력도, 화제의 글을 써보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품을 엄두도 못 냈기에 그건 아닌 거 같고... 오히려 글을 올리지 않은 채 확인하는 통계는 나름 재미있기도 하다. 방금 쓴 글이 사람들 눈에 띄어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행여라도 누가 볼까 당장 발행을 취소해야 할 거 같은 불안한 마음이 대립하며 긴장되는 순간은 이미 지나간 후이기에, 마치 이미 승부가 정해진 녹화 경기를 결과도 알게 된 한참 후에 다시 시청하는 기분이랄까.

그날의 조회 수가 당연히 0이 나와야 할 거 같은데 막상 0이 나오는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흔치 않고 어떻게 서든 1-3 사이의 숫자가 찍히는 것이 재미있을뿐더러 도대체 어떻게 알고 들어와 그 글들을 읽게 되는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유입경로를 보여주지만, 그래서 대체 어떤 연유로 나의 글을 클릭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기엔 너무 모호하고, 나는 네이버도 다음도 사용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기에 어떤 식으로 나의 글이 뜨게 되는지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차피 형편없이 낮은 조회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야 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SNS도 하지 않고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는 것을 아는 지인이나 가족도 한 명도 없는 상황이기에, 완벽한 타인이 한 명이라도 어떤 경로와 이유에서든 나의 지나간 글을 클릭하게 되는 우연이 하루에 한 번씩은 일어난다는 사실이 재밌고 의아하다.  

그렇게 관찰한 결과, 대부분의 날들 그 몇 안 되는 조회수를 차지하는 1위부터 3위까지의 글들이 있었으니 바로 '가난한 의사입니다만', '본전을 뽑는다', '베이컨과 햄의 차이'였다. 웃음이 나왔다. 앗, 이들이 바로 '낚였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제목들인가?


'가난한 의사입니다만'이라는 글은 브런치 시작 초반에 쓴 글로, 정말이지 오랜 시간 갈등하고 고민하며 부풀어 있던 생각들을 스스로 정리해 보며 어느 정도 매듭지고 싶은 마음에 담담히 적었냈던 글이었다. 그런데 글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그전에 올렸던 글들의 조회수가 10번만 넘어도 신통방통해하던 나에게 갑자기 조회수가 10,000이 넘었다는 알림이 왔고, 라이킷 수가 90이 되었고, 50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겼고, 1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신기했고, 감사했고, 그다음엔 무서웠다. 계속해서 오는 알림에 놀라서 알림 설정을 바꿀 생각도 못 한 채 전화기를 엎어놓았을 정도로.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기보단 나의 마음을 살피기 위한 글이었고 아무도 모르게 글을 쓰고 올리는 공간이었기에 당시엔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썼었음에도, 너무 많은 응원과 칭찬의 댓글들을 보며 내가 너무 스스로를 포장해서 썼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몇 번의 답글을 달다가 결국 계속 '저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요. 결국 다 할만하니까 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의 뉘앙스로 모든 답글을 달고 있게 될 거 같아 답글 달기를 멈추었다. 그냥 아예 시작하지 말 걸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그럼 그냥 '아, 이 사람은 답글을 달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여겼지 않았을까.  그냥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만으로 일관하는 것은 너무 성의 없지 않나 하는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나머지 댓들들에 답글을 그냥 안 달아버리는 극단적인 편을 선택했다. 다수의 따뜻한 마음들을 그냥 생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 걸까 걱정될 때면 이윤주 작가님이 스스로에게 했다던 '겸손해지려 하지 마. 넌 그만큼 대단하지 않아'라는 말을 떠올리며 '결국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애써 덮었다. 맞는 적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나면서 또 힘들었던 것은 직장에서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돌아설 때나, 하고 있는 일에 불만이 생길 때였다. 글로는 내가 엄청나게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착각하게 해 놓곤 실제는 그렇지 않은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어렴풋이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해 본 것 같다. 에세이는 물론 소설보다 훨씬 더 리얼리티가 있는 글이긴 하지만, 사람은 변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치관도, 외모도, 처한 상황도 변하는데 에세이는 논픽션이라는 이유로 어느 날 읽은 누군가의 에세이가 그 사람의 전부일 거라고, 그 사람을 100% 보여준 글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부터 돈을 모아 부자가 된다거나, 직장을 옮겨 매우 화려한 곳에 취직한다고 해서 저 글 속의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런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고민의 기간은 길지 않아도 되었다. 어찌 되었든, 혹시나 아직도 나의 글을 읽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때 미처 진심으로 다 전하지 못한 말, 감사합니다.


'본전을 뽑는다' 나  ''베이컨과 햄의 차이' 경우엔 정말이지 의도치 않게 독자들을 낚은 경우일 거 같은데 그 이유는 유입 경로가 검색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글 경우엔 어쩐지 재테크 혹은 투자에 대해 검색하던 분들이었을 거 같고, 두 번째 글 경우는 진심으로 베이컨과 햄의 차이가 궁금해서 검색하던 분들이었을 거 같다. 심지어 유입 키워드에 '베이컨과 햄의 차이'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나와있던 적도 있다. 그런 경우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내심 미안해진다. 두 글 모두 검색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글 초반에 깨닫고 그만 읽었을 경우가 더 많았겠지만. 누군가가 그런 제목을 쓰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독자를 낚는 자극적인 문구나 제목들을 혐오하는 편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그런 일을 저지른 공범자가 된 느낌이라서 간혹 글을 내릴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에게 소중했던 기억들이 담겨있는 글들이기에  그냥 모른 척하고 있는 중이다.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나 보다, 그러고 보니 정말 베이컨과 햄의 차이는 뭐지라고 자중 궁금해하며.


앞에 언급한 세 글들은 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을 낚는 제목들이 되었기에 부끄러울 것은 없다면 '콜 센터로 간 치과의사_1&2'의 경우엔 글을 완성하기 전 제목부터 떠오른 경우였고 흥미를 끌만한 제목이라는 느낌을 갖고 시작한 글이었기에 다소 민망한 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믿었던 밑바닥의 감정들까지 휘저어 끌어올릴 만큼 격해졌던 시간들을 통과했기에 글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제 풀에 꺾여버린 감정들처럼 공허하면서도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의 글이 된 거 같아 내 글이지만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버렸다. 게다가 제목으론 혹하게 했지만 내용은 두 번째 파트를 이어 읽을 만큼의 흥미를 주지 못 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 듯 파트 1의 경우는 1000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반면 파트 2의 경우엔 100도 안 되는 조회수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조회수가 1000이 넘으면서 라이킷이 10 남짓인 조합보다 조회수는 10이 조금 넘더라도 라이킷이 6 같은 조합이 나에겐 더 의미가 크다. 10명이 글을 열어보았는데 적어도 6명은 끝까지 읽어봐 줄 만한 글이었나 보다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라이킷 중에 한 명이라도 새로운 이름이 보일 때면 내 글의 가능성이 조금은 더 열린 듯한 기분에 계속해 볼 만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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