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은이에게 지난 이틀 연속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었다. 할 일은 뒷전이고 계속 여기저기 어지르며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겨우 끝 낸 숙제를 함께 검토하기 시작했다. 앞 장엔 멀쩡히 풀어놓고는 뒷 장에선 틀린 문제들이 보였다. 맞게 풀은 문제는 대체 누가 푼 거냐는 의문이 절로 들 만큼, 도저히 이해가 안 간 다는 듯 계속 헛다리를 짚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의 인내심과 체력도 바닥이 나며 참았던 잔소리를 터뜨렸다. 한 번 터진 화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아이를 울게 만든 후에야 입을 다물 수 있었다.
이틀 내내 같은 패턴으로 화가 터졌다.
오늘은 퇴근 후 집에 도착했지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늘도 똑같이 화를 내버린다면, 차라리 느지막이 밖에서 머물다 들어가는 편이 아이들 역시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을 다 잡고 문을 열었다. 이틀 연속 터뜨린 화 따위는 기억에서 싹 지우고 엄마를 용서한 건지, 엄마가 내는 화는 정말 그때뿐인 이해 안 가는 해프닝인 건지 여전히 어질러진 바닥과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한편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은이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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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커피를 내렸다. 마음도 머리도 차갑게 식힐 수 있을까 하는 바람으로 얼음을 넣어 내렸다. 책장에서 윤고은 작가의 ‘빈틈의 온기’를 빼들고는 난장판인 소파를 헤집고 커피와 함께 앉았다. 보통 같으면 바로 저녁 준비를 했겠지만, 피곤한 몸으로 눈에 밟히는 어질러진 꼴을 참고하다간 그제와 어제와 같은 꼴이 될 거 같았기에. 책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다 생각했다. 누군가 써 놓은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으면 그 사람에겐 당시엔 심각했을, 힘들었을 수도 있는 일들도 조금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은 더 수월한 마음으로, 때로는 심지어 재밌어하며 읽게 되는 경험을 한다. 그건 꼭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 내가 썼던 글을 나중에 보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글로 옮겨졌을 땐 그 상황을 조금 더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마치 과거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힘에 부치고 혼잡한 상황이었어도 시끄러운 잡음과 부산스러움은 사라지고 그 찰나의 모습만 남는 것처럼- 대부분 즐거워 보이는- 그때의 힘들었던 마음조차 바래서 ‘그땐 정말 힘들었지 뭐야’라고 추억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휘둘리는 나 자신이 그지 같고, 그렇게 작은 일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냐고 물을 지언정 그 작은 일들을 기꺼이 해 줄 수는 없는 마음들이 야속해서 폭주해 버릴 거 같은 나의 마음을 달래느라, 입을 벌리는 대신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지금의 상황을 거리감을 가지고 좀 더 차분히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 듯 글을 남긴다. 휘황찬란한 글솜씨를 가졌다면 조금 더 빠르게 마음이 진정됐을까 애석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