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 Dec 01. 2022

함께 시작하는 식사

식탁에  가족이 동시에 같이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스케줄을  맞추어야 한다는 따위의 굵직굵직한 사실 말고도, 아니 그런 것들이  맞춰진다고 해도 결국엔 실패할  있는데,  이유는 많은 경우 ‘동시에 같이앉기를 성공하지 못해서다. 앉아야 하는  순간 (… ) 포기할  없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괄호 안에 들어갈 일들은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사소하자면 한없이 사소할  있는 것들이지만,  순간만큼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투쟁하지 않으면 함께 자리에 앉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중요하게 느껴진다.


가족 구성원들이 상차림을 같이 한다거나, 조리 과정을 돕는다거나 혹은 뒷정리를 도맡아  누군가가 있다 거나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확실히 도움이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나의 마음,  주방에  있는 자의 마음가짐이다. 나의 마음은 수시로 변화하며 나의 이제 그만 멈추고 앉기에 훼방을 놓는다. 그건 김치를 옮겨 담다  김치 국물을 마저 닦아놓은  가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끓이다 넘쳐흐른 국물이 스토브에 말라 눌어붙기 전에 닦아내고 싶은 마음일 때도 있다. 치킨가스를 튀기고 남은 기름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계획에 없던 고구마까지 튀기느라 가족들이 식사를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옆을  떠나기도 한다. 얼핏 생각하면 효율성을 챙기고 알뜰살뜰 살림을 챙기는 것이 뭐가 잘못이야 싶다가도,  발짝 떨어져 생각해 보면 ‘이거 마저 하고 가야지하는 나의 마음이 ‘엄마, 이것만  만들고 갈게. 1분만  외치며 질질 끄는 단이의 마음이나, 놀던  마저  놀고 오고 싶은 은이의 마음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다. 빨리  온다며 혼내듯 소리를 질러가며 다른 사람들은  식탁에 불러 앉힌  막상 나는 이것저것 지금 해놓으면 나중에 편할 거란 마음으로 결국 그들끼리 먼저 식사를 시작하게 두고 부엌을 서성거린다. 마음 한편 내가 준비한 상차림이니 다른 사람들은 내가 부를  오는 것이

마땅하지만 막상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가서 앉아도 된다라고 여기는 걸까.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자기들 보곤 당장 오라고 하고 엄마는   와도 되는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까. 원래 ‘엄마라는 존재는 우린 먹어도 계속 일하는 거야 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게 될까. 어느 쪽이든 내가 꿈꾸는 바는 닌데.


아이들에게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게 하고 싶다면,  특히 둘러앉은 식탁에 자연스레 엄마의 모습을 그려놓게 하고 싶다면 그만을 외쳐야 하는 건 그들뿐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이라고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뇌인  가서 함께 앉아 식사를  것이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남편이   있는 만큼의 뒷정리를 감당하게  것이다. 그것이 비록 결국엔 내가 다시 정리해야 하는 자질구레함이 남는 서투름이라  지라도,  빠르게  번에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만약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단이는 아내를, 은이는 스스로를 자연스레 부엌에 남겨두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꿀꽈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