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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Jun 15. 2022

마지막 꿀꽈배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다면 아직 자고 있을 큰 아이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콜록거렸다. 얼마 후 화장대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작은 메모장을 건넸다. ‘목이 너무 아파. 목소리가 안 나와. 학교에 가기 싫어.’ 학교를 좋아하진 않지만 숙제는 더 싫어하는 큰 아이는 결석할 경우 숙제가 늘어나기 때문에 학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 자진해서 가고 싶지 않다고 하다니. 정말 아픈가 보다. 무엇보다 기침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직장에 못 간다고 연락하고 나니 출근 준비로 서두르던 마음이 풀리면서 다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간신히 참고, 꿀차를 만들어 큰 아이에게 마시게 한 뒤, 아직 자고 있는 둘째 은이에게 갔다. 이불에 돌돌 말려 자고 있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 꼭 껴안았다. ‘오빠는 아파서 학교에 못 가. 그래서 엄마도 집에 있어.’ 예상했던 대로 은이는 자기도 학교에 안 가겠다며 칭얼거렸다. 때로는 등교와 하교를 위해 태워다 주고 태우러 가는 것도 일처럼 느껴져서일까. 내가 집에 있으면서 작은 아이만 학교에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이 모질게 느껴져서였을까.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너도 가지 마.’


그렇게 우린 그날 하루를 함께 시작했다. 다행히 큰 아이는 점심이 되기도 전 기침도 나아지고 목소리도 돌아왔다. 역시 알레르기 증상이었던 듯했다. 처음엔 아이들도 나도 생각지 못했던 일탈에 좀 들떴다. 그러나 아침과 점심을 챙겨주고 끊임없는 ‘엄마’에 대답하다 보니 별 볼 일 없는 나의 체력은 금방 바닥났고 피곤함이 밀려왔다. 결국 다 같이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에 도서관에 가니 아이들이라곤 단이와 은이뿐이었고 매우 고요했다. 나의 마음의 고향 같은 도서관에 오니 재충전이 되는 듯했다. 아이들도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찾으러 나섰다. 나도 책을 좀 읽어볼까. 방심한 틈을 타 나지막이 들리는 은이의 목소리, ‘엄마, 내가 좋아할 만한 책 좀 찾아줘.’

끙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을 참으며 일어나 은이와 함께 책을 골랐다. 한 보따리 책을 골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녁으론 뭘 먹지. 9년째 엄마인데도 삼시 세끼를 챙긴다는 건 조금도 쉬워지지 않는다.


드디어 저녁까지 챙겨 먹이고, 뒷정리를 하고 앉으니 하루가 끝난 것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저녁을 다 먹은 후에 티브이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마무리 못한 일들을 하거나 하루 종일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날만큼은 더 이상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 꿀꽈배기 과자 봉지를 들고 앉았다. 읽다 만 책을 집어 들 찰나, ‘엄마아’


은이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굳이 내 무릎 위로 올라앉아 같이 책을 읽겠다고 했다. 오빠가 보는 만화가 재미없다는 거다. 내가 먹고 있던 꿀꽈배기를 보더니 좋아하며 자기도 먹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혼자만의 시간을 뺏기고 나니 마음이 옹졸해졌다. 마지막까지 간신히 버티고 있던 줄을 누군가 그냥 댕강 잘라버린 느낌에 화가 났다. 툴툴거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앞에 앉은 은이 머리통 넘어 보이는 책을 겨우 읽고 있는데, 은이가 말했다.


“앗… 엄마, 마지막 한 개 남은 거, 이거 내가 먹어도 돼?”  


아이의 물음이 가리킨 곳엔 하나 남은 꿀꽈배기가 있었다.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는 말론 부족했다. 사르르 녹았다기 보단 우루르 무너져 내렸다는 말이 더 가까웠다. 은이는 하나 남은 꿀꽈배기를 보며 나를 생각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분명 아이와 나는 똑같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는 생각지도 않게 얻게 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마지막까지 즐겼을 뿐이고,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버텼을 뿐이다. 나는 무엇을 움켜쥐고 있기에 나의 육아엔 이렇게 버티는 순간이 많은 걸까. 아이의 그저 좋아해 주는 마음 앞에선 모든 것이 변명 같다.


자기 전 은이는 나에게 말했다. I will miss you tomorrow. 잘려나가 형편없이 늘어져 있는 줄을 작고 여린 손으로 서툴게 묶어주며 ‘엄마, 나는 괜찮아. 엄마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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