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렸다.
가을비였다.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의 바람은 이내 매서운 칼바람으로 바뀔 터였다.
그게 순리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느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제시간에 찾아오는 계절들.
기간제 면접을 앞둔 J는 자신이 걸어온 시간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 걸어온 것인가 생각했다. 혹여 지금 가는 길이 또 다른 잘못된 길은 아닌 걸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돈은 벌어야 했고 야속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거울을 마주하고 발견한 팔자주름이 생각났다. 신체의 시간도 계속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게을리하지 않고 아침마다 레몬즙을 넣은 녹차물을 마셔도 나아지고 있는 게 맞을까 의심했다. 운동을 하면 운의 흐름이 바뀐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이 떠올랐다. J는 운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더 운동을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면서 길을 걸었다.
아직 면접 시간까지 30여분이 남아있었다. J는 미리 정해둔 카페로 향했다. 계절을 알리는 신호탄다운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창이 열려 있어 적당히 내리는 비와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주문한 라테가 나왔다. 몽글한 폼이 잘 유지되고 있었고, 목구멍을 타고 뜨뜻하고 부드러운 액체가 흘러 내려갔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카메라 렌즈를 열었다. 마주한 풍경을 네모난 프레임에 담아냈다. 조금 더 생동감을 더하고자 영상으로도 남겼다. 그리고는 또 라테 한 모금.
순간 지금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J는 생각했다.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는 면접을 앞둔 J는 그저 지금 눈앞의 풍경과 라테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말랑한 상상을 하고 있던 찰나, 조용히 내리던 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무수한 빗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땅으로 꽂혔다. 앉아있던 자리는 금세 물바다가 되었고, 빠르게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면 나 역시 물에 빠진 생쥐가 될 판이었다. 기분 좋은 친절함을 장착한 카페 직원은 서둘러 창을 닫아주었고, 닫힌 창 너머로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바라보았다.
J는 또 한 번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고, 내가 무얼 위해서 이곳에 왔는지, 무얼 원하는지 뚜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남아있는 라테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여전히 몽글하게 남아있는 라테 폼은 그 자리가 제 자리인 양 바닥에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