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해외여행을 떠나려면 약간의 충동성과 일종의 광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일상생활 중에 갑자기 큰 비용과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모두에게 쉽지 않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떠나야 한다는 굳은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내 스타일은, 마음먹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먹은 일은 대개 실행에 옮기는 편이긴 하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해버리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내게 주어진 시간이란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각성이 생기면, 광기에 좀 더 불을 붙일 수도 있다. 20킬로그램짜리 가방을 끌고, 멀쩡한 관절로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다리와 허리도 언젠가 한계에 다다를 날이 올 것이다. 그것 말고도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이다!
오랜 팬데믹 기간이 서서히 종식되면서 사람들은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팬데믹 기간에 자진 고립되는 일을 택하면서, 다른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수월하게 보낸 편이다. 그걸 어떤 영화제에서 지인 영화감독을 만나며 깨달았다. 영화와 공연예술 분야는 정말 많이 힘들다는 것을 얘기를 전해 듣고 알았다. 난 그 기간에 장편 소설 한 편을 쓰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 특별한 경험을 하고 나니 사람이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했다. 바깥세상의 시간과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시간이 흐르는 나만의 영역이 있었다. 몰입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파리에서 오래 지냈으면서도 영국 땅을 한 번도 밟아 보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런던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못 가고 귀국하고 말았다. 런던에 사는 지인이 자기 집에 묵어가라고 인심을 썼는데도. 그래서 영국과 아일랜드는 언젠가 길을 나서게 되면 한 번에 다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많은 예술가, 문인들을 배출한 곳이라서 나에게는 늘 성지처럼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엔 영국에서 공부해 보는 것이 꿈이었다. 옥스퍼드, 캠브리지 등의 대학에서 교수와 일대일 멘토링 식으로 진행된다는 수업이 너무 부러웠다. 에세이를 써서 교수와 함께 토론하는 방식으로 공부한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 전해 들은 바로는 그랬다. 도시 전체가 수많은 컬리지로 구성된 캠퍼스인 것도, 고색창연한 분위기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대학을 불문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그 꿈과는 멀어졌고 나는 담배꽁초와 먹다 버린 플라스틱 커피잔들이 아무렇게나 뒹구는 파리 낭테르 대학의 황량한 콘크리트 건물에서 잠시 공부를 했다.
관광의 성수기인 7월 말에 여행을 떠나는 일은 내게 좀처럼 없는 일인데, 요즘은 성수기가 가을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비용 차이가 크지 않았고, 그렇다고 겨울에 영국여행이란 내 사전에 없는 말이었으므로, 또 한 번 자신만의 금기를 깨고 7월 말에 덜컥 일정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내년에는 여유가 생겨 함께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친구를 기다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이토록 다급하게, 미친 듯이 나는 떠났다. 두 달 전에 노모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며칠을 보낸 것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인생은 짧다는 걸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여름을 보내고 온 것이 2017년이었으니 6년 만의 장거리 해외여행이었다.
6년의 세월은 짐 속에 넣어갈 물건들의 종류에도 조금 변화를 가져왔다. 약봉지가 늘어났고, 때마침 없던 요통이 생겨 허리에 찰 복대까지 챙겨야 했다. 무게를 줄여야 하기에 카메라도 제일 좋은 것이 아닌 제일 가벼운 것으로 챙겨야 했다. 재밌는 사실은 서울을 떠나면서 허리 통증이 사라져서 약도 먹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거의 늘 여행 중에 컨디션이 좋아지는 편이었다. 집을 떠나면 밥도 잘 먹고 온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왠지 모르게 씩씩해진다. 낯선 환경을 만나면 엔도르핀이 도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젠 너무 고생하면서 하는 여행은 하기 싫다.
장거리 비행을 앞두면 꼭 도지는 지병이 있다. 병명은 ‘떠나기싫음병’. 증세는 출발 2-3일 전에 시작된다. 그때쯤이면 출발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 집을 비우는 동안을 위해 단속해 두어야 할 일 등으로 녹초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모든 게 다 귀찮아지면서 떠나기 싫어진다. 이건 수년 전 파리, 서울을 제집 드나들 듯이 오가던 시절에 시작된 지병인데, 꼭 날짜만 잡으면 떠나기가 싫었다. 지구 위에서 나라를 한 번 옮길 때마다 치러야 하는 번잡스러움 때문이다. 블루마블 게임처럼 옆으로 말을 옮기기만 하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니면 침대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되어 그 위에 짐을 싣고 스르르 날아올라 목적지까지 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이 같은 상상을 하곤 한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행 떠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불쑥불쑥 주책맞게 지병이 도진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인천공항 제2 터미널은 여러 가지 시스템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어 확실한 현실 자각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했다. 수화물 체크인도 ‘Back Drop’이라는 영문으로 표지를 붙여 놓았는데 내가 아는 의미로는 ‘배경’이란 뜻이 전부다. 공항에서 ‘배경’이라는 단어가 쓰인 곳이 수하물 자동 체크인 장소라고? 구글 번역기에도 콜린스 영어사전에도 ‘배경’ 말고 다른 의미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항공산업계에서 나온 신조어인 듯하다. 한국에서 영어의 파워는 내 상상을 초월한다. 언어로는 영미권의 식민지가 된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보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내게는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효율성이 모든 가치의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인지 ‘그냥 영어로 표기하면 될 것을 뭐 하러 우리말로 번역해서 귀찮게 만드는가’ 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쯤 되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우리말에 대한 자존감은 거의 바닥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모 항공사의 체크인(체크인도 이젠 너무 자연스러운 외래어가 됐다) 절차 안내 페이지다. 영어로 셀프백드랍이라고 쓰고 괄호 안에 '자동수하물위탁'이라는우리말 번역을 썼다. 순서가 바뀌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출국 심사도, 상주 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고 스탬프를 찍어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기계가 여권을 스캔하고, 안면 사진을 찍으며 지문을 채취한다. 이런 시스템이 편리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빠르게, 간편하게, 사람 대신 기계와 로봇이’의 물결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선택의 여지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하는 것 같다. 사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투덜대기는 하지만 받아들여야지 별난 도리는 없다. 스티브 도냐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에서도,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원제: 바다에 관한 소소한 철학)》에서도 그저 받아들이며 살라고 권유하지 않던가. 사막이 바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인생은 사막이고 바다라고 저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2시간에 한 번씩 기내산책과 스트레칭을 하며, '이 나이'에 혼자서 여행을 떠난 나를 신기해 하는 승무원과 잡담을 나누며 무사히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잿빛 하늘이 낮게 내려와 앉아 있었다. 7월 말이었지만 기온도 선선해서 20도를 넘지 않았다. 서울의 무더위를 피하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버스에 올라 첫 번째 목적지 옥스퍼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