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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pr 26. 2022

그렇게 힘들면 아줌마를 쓰세요

십 년 전, 내 옆엔 두 살 터울인 아들 둘이 늘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분리불안에다 야경증으로 힘겨워하던 여섯 살 큰 아들을 위해 당시 난 육아휴직을 했던 터였다. 사내 녀석들 치고는 얌전한 편이었지만 아이들은 잘 먹고 잘 뛰어놀았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두 아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는 것. 그 임무를 다하기 위해 온갖 눈총을 이기고 회사 최초로 육아휴직을 받아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육아휴직 덕분에 이른 아침 장거리 출근과 취재, 기자 작성 부담이 사라졌는데 몸은 더 힘들었다. 아이들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만으로도 워킹맘으로 지낼 때만큼 고됐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살림이라더니, 아이들이 놀다가 사라진 자리는 아무리 치워도 다시 지저분해졌다. 요리에 취미가 없던 내가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건 쉬이 손에 익지 않았다. 매일 빨래하고 널고 개키기를 반복하자 '이러려고 공부해서 대학까지 나왔나'라는 자조가 절로 나왔다.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당시 주변엔 형님뻘 엄마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아이의 입시와 취업, 결혼을 걱정하는 시기였다. 꼬물거리는 녀석들을 24시간 돌봐야 하는 나를 보며 그들은 분명 자신들의 소싯적 시절을 생각했을 거다. 한창 손 많이 갈 아이들을 보느라 몸이 축 나고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내게 그들은 따뜻한 커피와 맛있는 밥으로 응원 해주곤 했다. 친정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는 내게 '형님들'은 진정 고마운 존재였다.


그날도 이야기 끝에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이 버겁다고, 살림 좀 누가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더했다. "그럼 아줌마를 써요."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님 중 한 명이 대뜸 말했다. 그런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왜 홀로 고생하냐는 표정으로. 


예상치 못한 조언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 도우미를 부르는 게 이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 중 하나로구나. 집에서 밥 해 먹기 힘들면 나가서 간단히 사 먹으면 되는 일처럼. 마트 가서 장보기 귀찮으면 백화점 지하 슈퍼에서 배달 서비스를 시키면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편한 거 모를까. 돈이 없어서 가사 도우미는 고려 대상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는, 아니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 austriannationallibrary, 출처 Unsplash


물론 그녀는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던진 말이었을 게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정은 그토록 신박한 방법을 택하기엔 벌이가 넉넉지 못했다. 육아휴직을 택하면서 이미 수입이 줄어들 걸 예상한 바였지만 현실은 훨씬 갑갑했다. 두 아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만으로도 돈은 빠진 독에 물 붓듯 들어갔다. 주변 엄마들의 교육열을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알뜰하게 살림해 빚을 늘리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게 당시 내 목표였다. 이를 위해 난 편리함 대신 내 한 몸 바지런히 움직이기를 택했을 뿐이다.


그녀는 내가 원한다면 금방이라도 잘 아는 '이모님'을 소개해줄 능력도 갖고 있었다. '절 생각해줘서 고마워요'라는 의미로 설풋 미소를 짓고 나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우리 형님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김영하 작가는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라고 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재벌집 아들 주원(현빈)이 타고난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수입 컨버터블이나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고급 트레이닝복이 아닌, 가난함에 대한 천진한 무지라고. 그는 가난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에게 묻는다. "혹시 가난한 사람들은 뭐 사고 싶은 게 있거나 하면 오랫동안 저축도 하고 마음도 졸이고, 뭐 그러는 거야?"


멋진 형님들 사이에서 귀여움 받던 내가 그녀를 탓할 마음은 없다. 예상치 못한 말 한마디는 그들과 내가 분명 다른 세상에 속했다는 걸 절감케 했을 뿐.  누구나 자기만의 세상을 살면서 경험한 만큼만 알아간다. 인간의 좁디좁은 사고력으로 다른 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끔 주변과 나 자신을 비교하다 속상해질 때면, 누군가 의도치 않게 던진 말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낼 때면 그날을 생각한다. 우린 그저 상황이 달라 모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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