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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May 27. 2022

금쪽이에 흔들릴 거 없어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지만


요즘 대한민국 육아를 책임진다는 오은영 박사의 영상을 보고 오후 내내 생각에 잠겼다. ‘금쪽이신드롬이   오래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제대로  적은 없었더랬다. 평소 TV 즐겨 보지 않는 데다 일부 극적인 상황을 부각하는 방송 특성상 그런 류의 프로그램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드라진 연약함을 보고  그보다 낫다고 자만하기도 쉽고, 분명 서로 다른 삶일 텐데 타인과 비교하며 나의 못남을 자책할 것도 뻔해서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에게 신박하게 들어맞는 해결책이라고 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맞게 적용되는 것도 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유튜브 알고리즘에 걸러져 오 박사의 영상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상담 프로그램이었다. 얼굴이 알려질 만큼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지만, 그들 안에는 여전히 상처받고 아파하는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할 일을 최대한 미루는 사람, 어릴 적 부모의 학대 때문에 번아웃이 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는 게 두려워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세상에 온전하고 완벽한 부모는 없다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모두 다 내 이야기 같아 섬뜩해졌다.


 동생보다 형이잖아. 동생   챙겨.’ ‘네가 엄마를 도와야지.’, ‘엄마 힘들어.  알아서  하겠니?’  입에 착 붙어 무자비하게 쏟아졌던 말들이 부지불식간에 아이 마음에 그늘을 드리웠을 터였다. 이를 어쩌나. 지난 16년간 아이에게  말을 모두 모으면 내가 압사할 것만 같았다.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없는 시간인지라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키워보겠다고 그리 마음먹었건만.  인생 통틀어 가장 오래 탐구하고 잘하려 애써  일이 육아였던 것을, 오히려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는 생각이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건가. 부모 역할이 이리 고단할 수가.


얼마 전엔 SNS에서 “'남에게  끼치면  '라고 하면 아이가 눈치를 보게 된다." 말을 보고 움찔 놀랐다. 어려서부터 " 끼치지 말라" 말을 듣고 자란 나와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삶의 진리인 , 인간관계의 미덕인  동일한 조언을 해왔다. 남편에게 우리의 잘못을 함께 반성하자며 이를 공유했다. '우리가 만날 하는 말인데 이를 어째요.' 남편에겐 예상외의 답이 돌아왔다. "일부만 뽑아서 올린  한마디에 호들갑   없어. 일리 있는 말이면 우리가 점차 줄여가면 되는 거고. 부모로서 엄청난 잘못을 했다고 매번 그리 자책할 필요 없다고."


세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자녀교육법을 마주할 때마다 어미로서 못난 모습에 뒷목이 서늘해진다. 그때 이렇게 할 걸, 그러지 말 걸. 내가 이미 애를 다 망쳐놓은 건 아닐까. 이만하면 족하다고 스스로 도닥이다가도, 다음 날이면 모든 게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고 머리를 쥐어박기를 여러 번. 그럴 때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소리 지른 과거를 반성하고 유순하고 온화한 엄마로 변신했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슬금슬금 본성으로 돌아가곤 했다. 일관성 없는 부모가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서 더 나은 부모가 되고픈 바람이었을 게다.


영상을 보고 나니  말할 수 없는 후회가 밀려온다. 어리석고 부족한 어미 아래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렇다고 갑자기 잘해보고자 애쓰지 않기로 한다. 오늘의 모습을 내일 또 반성하겠지만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련다. 성큼성큼 크고 있는 두 아들에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우리 집 큰 녀석은 정말 속상할 때 입을 다문다는 것, 화를 참기 위해 홀로 방에 들어갈 땐 더 이상 말을 걸지 말고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 작은 녀석은 축구, 야구 경기를 볼 때마다 깊게 몰입하는 나머지 손바닥이 축축해지도록 긴장한다는 것. 쑥스럽고 민망하면 귓불이 빨개지고 눈꼬리가 가늘어진다는 것.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말없이 꼭 안아주는 거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느냐.”며 훈계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걸 꾹 참고, "오은영 박사님이 그랬는데 말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꾹 참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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