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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Nov 23. 2022

2023년 암울한 전망 앞에서

망망대해 돛단배가 된 듯

그는 광대 옷을 입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흑백 사진 속 머리카락은 밝았고, 눈 주변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주름이 선명했다. <라이프 사진전:더 클래식 컬렉션>에서 만난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지만 오디오 가이드에선 그가 위대한 희극배우이자 감독이라고 말했다.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찰리 채플린이었다.


찰리 채플린 _ 라이프 사진전 : 더 클래식 컬렉션


그는 무성 영화로 세계를 호령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어서 <모던 타임스>를 제작할 당시엔 이미 유성 영화가 하나, 둘 등장하고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자신의 육성을 영화에 담는다. 영화 말미에 알 수 없는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유일하게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이다. 그는 이미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절감했을지 모른다. 이제 더는 과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더는 목소리 없이 마임과 자막으로만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펼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진 속, 어두운 배경 안에 그는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는다. 작게 감춰진 눈은 들여다볼수록 슬프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방법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세상이 변하고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거대한 광풍 가운데 외롭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도 나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않았을까.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었던 때, 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전염병 창궐로 살아가는 일조차 막막하다고 모두 아우성일 때, 나 역시 아침마다 눈을 뜨면 무력감에 짓눌렸다. 언론사로 돌아갈 마음은 없고, 달리 가진 능력도 변변치 않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온라인 세상이 떠들썩했다. 호객 행위를 하듯, 무료 강의가 쏟아졌고 SNS에는 콘텐츠가 넘쳤다.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과거 경력을 밑천 삼아 글쓰기 강의와 모임을 열었다.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노련한 마케팅 방법을 알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운 온라인 세상에선 꼭 이래야 한다는 법칙이 없었다. 생각하고 실행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동안, 제2의 커리어가 쌓여갔다. 온라인 덕에 난 전국 팔도에 사는 이들과 글을 썼다. 사람들은 미국과 독일, 아부다비,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까지 어떤 어려움 없이 내 강의를 신청했다. 보잘것없었던 글쓰기 능력이 내게 주어진 달란트라는 걸 안 순간,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세상을 잡아먹을 듯 기세 등등하던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엔데믹’ 으로 바뀌었다. 들풀처럼 일었던 온라인 시장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SNS 세상에서 살고, 메타버스를 논하지만 방구석을 벗어나 밖으로, 밖으로 행동반경을 넓히는 게 눈에 보인다. 코로나가 전화위복이 돼 내게 새 길을 열어줬듯, 다시 얼굴을 맞대고 몸을 부대끼며 살아갈 상황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라는 걸 깨닫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하게 된 세상에서 내가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휘몰아치는 세상의 물결에 압도되지 않고 파도를 타는 배처럼 유유히 내 실력을 드러낼 수 있을까.


올해를 한 달 여 앞두고, 2023년 전망이 쏟아진다. 유난히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가슴을 옥죈다. 어느 때고 변화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잘 살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가득한 것을. 11월,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종이 한 장 넘기듯, 내 인생도 술술 잘 넘어가면 좋으련만. 요 며칠,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 작은 돛단배가 된 듯 내 마음도 출렁거린다. 인생이 어렵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걸 보니, 마냥 좋았던 젊은 날이 지나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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