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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Dec 12. 2022

마흔 넘어 필라테스 하면 생기는 일

지난 6월 말, 매우 큰 마음을 먹고 필라테스 레슨을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건 수년 전, 필라테스가 나와 잘 맞겠다고 생각을 한 건 5년 전, 필라테스 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겠다고 다짐한 건 작년이다. 필라테스는 제대로 된 강사를 만나야 한다는 고집스러움을 핑계 삼아 운동은 하지 않은 채 마음에 숙제로 끌어안고 지냈다.


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었지만 가장 하기 싫은 일 역시 운동이었다. 운동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지만 운동할 수 없는 이유는 100가지도 댈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100미터 기록 20초, 공 멀리 던지기 13미터, 철봉 매달리기 10초. 운동을 못 해서 운동이 싫었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뚱이의 폐해는 마흔이 넘어 서서히 드러났다. 해가 지면 내 몸도 쉬이 방전됐다. 점점 어깨가 결리고 팔이 돌아가지 않았다. 코어 근육이 부족해 허리를 곧추세우지 못하고 양팔을 책상에 기대 버티는 힘으로 장시간 앉아서 일을 한 결과였다. 운전하다 뒷자리에 놓인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려다 근육이 찢어질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 수 있어서 운동을 미루고 또 미뤘다. 잘 때조차 아파오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어깨 주사를 맞았다. 언제부턴가 오른쪽 팔을 45도 이상 들어야 하는 일을 포기했다.


내 몸의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동네에 널린 게 필라테스 센터지만 물리치료사 자격증이 있는 필라테스 강사에게 레슨을 받고 싶었다. 운전해서 15분을 가야 하는 옆동네 센터에 체험수업을 신청했다. 체험수업 동안 강사는 내 몸을 면밀히 관찰했고 적절히 동작을 알려줬다. 무리가 갈 듯싶으면 그녀가 알아서 먼저  가동 범위를 좁혔다. “허벅지 앞 근육이 짧아서 허리를 숙이면 고관절 근육이 집히는 느낌이 들 거예요.”  운동치인 내가 인지하고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설명도 구체적이었다. “바지 앞지퍼를 끌어당겨 채우는 느낌으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집어넣으세요.” “자, 목과 턱 사이에는 방울토마토 하나만큼 공간을 두시고요.” 체험수업 후 거금을 들어 30회 일대일 수업을 신청했다. 그달 신용카드 한도가 꽉 찼다.



매주 2회, 필라테스가 새로운 루틴이 됐다. 오랜 시간 잔뜩 움츠러들어 딱딱히 굳은 근육을 펴는 건 심히 괴로웠다. “그만!” 외치고 싶지만 레슨비가 아까워 이를 앙다물고 참았다. 일대일 수업이라 딴짓은 불가했다. 아랫배 힘이 빠지는 순간을 선생님은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레슨이 끝나면 온 몸이 너덜너덜해져 나도 모르게 팔 자 걸음을 걸었다. 두툼한 살 속에 파묻혀 있던 엉덩이 근육을 사용한 날이면 며칠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 내내 난생처음으로 몸의 근육을 헤아리고 성실하게 움직였다.


효과는 3개월이 지나서 조금씩 나타났다. 엉덩이가 허리 쪽으로 살짝 올라가 붙었고. 울퉁불퉁 허벅지 근육이 매끈해졌다. 옆구리살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몸의 근육을 사용할 줄 알게 되자 짧은 시간 운동을 해도 효과는 더 컸다. 몸이 가벼워졌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청바지가 쏙 들어가는 기쁨이란! 낮 동안 졸리지 않았고 덜 피곤했다. 매일 급류에 휩쓸리듯 지나가는 일상이 안타까워도 어찌할 바 몰랐는데 답은 하나, 운동이었다. 덕분에 모든 일정을 내 손아귀에서 쥐락펴락했다. 올가을 유난히 여유롭고 평안했다.


무엇보다 운동해야지 말만 그치지 않고 실제 해낸 사람이 됐다는 자부심이 내 안에 차올랐다. '#오운완' '#운동기록'이라는 해시태그는 남의 것이었는데, 우둔하고 불편한 몸이 불만스러워도 기꺼이 몸을 움직일 만큼 부지런하지도, 의지가 강하지도 못해 한없이 자책했는데, 이제 게으름에서 빠져나와 운동을 한다. 운동이 좋다는 말을 수만 번 들어도 아무 소용없다. 결국 직접 움직이고 실행해야 내 것이 된다. 당분간 필라테스는 계속할 참이다. 누가 아는가. 마흔 넘도록 운동치로 살아온 몸도 꾸준히, 성실히 운동하면 충분히 짱짱해질 수 있다는데 그게 내 것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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