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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Dec 03. 2022

"아들, 카타르 월드컵을 써 봐"

아이 글쓰기 뭐부터 써야할까요_주제 정하기

올해 중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은 매주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 엄마 아빠를 둔 아들답게 가르치지 않아도 글을 잘 쓰면 좋겠지만 어느 수준에 이르니 더는 안 되겠더라구요.


물론 글쓰기는 감각이어서 물려받는 것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대대로 학자, 문인, 예술가 집안이 있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부모가 글 쓰고 책 읽는 걸 보는 것 자체가 교육이니까요. 하지만 책보다 공을 좋아하는 둘째는 문해력도 안타까운 수준입니다. 얼마 전 교내 글쓰기 대회를 앞두고 제 속을 뒤집어 놓은 이후로 매주 글을 쓰고 있어요.


단언컨대, 글을 잘 쓰면 아이 장래는 걱정할 게 없다고 믿어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논리 정연하게, 맛깔스럽게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할 게 없죠당장 글을 잘 쓰면 국어 공부는 물론, 학교 수행평가에도 도움이 될 테고, 각종 공모전에 나가 상을 탈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기소개서 잘 쓰면 대학 진학에 유리하고, 취업 기회도 많아집니다. 사회생활하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발표 대본도 매끈하게 써서 계약을 따내든, 협상에서 이기든 패를 자기 것으로 가져오겠죠.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는 물론 유튜브 등 SNS로 인플루언서가 되는데도 한몫할 거예요.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알아가요. 힘든 감정도 글을 쓰면서 풀어내고 생각도 정리하구요. 글쓰기는 아이의 삶을 훨씬 풍성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는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제로 아이를 글 쓰게 하고 잘 쓰게 돕느냐는 겁니다. 일전에 말한 대로 전 매주 아이가 재미있게 쓸 법한 주제를 내주고 1000자 이상 글을 쓰게 합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에게 구글 닥스로 공유합니다.

중학생 아들과 사이좋게 글쓰기

중학생 아들과 사이좋게 글쓰기


주제에서 고민인 분들 많으실 거예요.

아이가 관심 갖는 것,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것, 5분 정도 생각하고 바로 글로 토해낼 수 있는 것이면 좋습니다. 글쓰기를 막 시작했는데 고도의 사고력과 집중력을 발휘해 장시간 고민해서 글을 써야 한다면 아이는 두 번 다시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할지 몰라요. 겨자씨만 한 자기의 생각을 글로 한 바닥 풀어낼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 어렵고 복잡한 주제도 충분히 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 이게 아이들 글쓰기의 중요한 출발이라고 확신해요.


몇 주전 아이에게 '지금 나에게 간절한 것은 무엇인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주제를 제시했어요.

다소 철학적이라고 생각됐는지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주제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금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나요?


흠, 1보 후퇴.

아이가 생각하지 않겠다고 해서 부모가 발끈하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대신 주제를 바꿔주는 거예요. 아이가 기꺼이 글 쓰게 하려면 이 정도 양보는 감수해야 합니다.

"카타르 월드컵에 대해 써 봐." 


아이는 축구광입니다. 제 몸을 던져 공을 넣는 것도 잘할뿐더러 전 세계 유명 축구 선수의 이름과 포지션, 소속팀, 몸값까지 줄줄 외웁니다. 아이는 씩 웃더니 말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1000자를 넘겨 썼다며 제게 글을 공유했습니다. 아이가 쓴 글 한 번 보실래요?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나의 기대>

오늘 오전 1시 킥오프를 시작으로 카타르 월드컵에 시작된다. 이번 월드컵은 다른 월드컵들과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지역에 관한 차이점이다. 이번 월드컵은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리고  최대한 덥지 않게 최초로 겨울에 진행하게 된다. 그래도 낮에는 36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고 한다. 두 번째로 많은 부상자들이다. 이전에 월드컵들도 부산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프랑스가 부상자 속출로 인하여서 큰 전력 손실을 입었다. 핵심 중앙 미드필더 캉테와 포그바, 그리고 발롱도르 수상자 벤제마,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은쿤쿠까지 부상을 당하면서 월드컵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월드 클래스 공격수 손흥민이 안면 골절을 당했다. 다행히도 뛸 수는 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나라는 H조로 우루과이, 포르투갈, 가나와 함께 한조에 속해있다. 최악의 조는 아니지만 좋은 조도 아니다. 삼촌과 형과 나의 예상은 우루과이와 포르투갈 상대로 2패 가나를 상대로 1무, 총 1무 2패를 예상했다. 솔직한 바람은 3승이다. 그래도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이 있기에 3승 보다는 2승 1패를 원한다.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팀들이다. 전방 압박을 강하게 한다. 우루과이에는 중원에서 미드필더 발베르데가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하고 공격진에는 카바니, 수아레즈, 누녜즈가 활약한다. 포르투갈도 우루과이와 비슷하게 중원에서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버티고 있으며 공격진에는 호날두, 펠릭스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팀들을 상대로 수비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예상하는 포메이션은 3-5-2이다. 백 3에는 김민재, 김영권, 권경원이, 중원에 5명에는 가운데 한 명이 홀딩 미드필더로 정우영, 양쪽으로 옆에는 손준호, 백승호, 그리고 윙에는 왼쪽에 손흥민, 오른쪽에 황희찬이다. 투톱에는 황의조, 조규성이다.
2002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 16강까지라도 가기를 원한다. 제발 3패만은 하지 말고 1승은 하자. 대한민국 파이팅!! Let’s go Reds!! (총 1017자)


참고로 이 글은 월드컵 우루과이 경기 전에 썼어요. 중간에 오타도 눈에 띄구요. 표현이 살짝 아쉬운 문장도 있지만 이만하면 좋습니다.


"단문으로 끊어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한 점이 눈에 띄네. 축구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도 돋보여. 글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글이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음. 중간중간에 필요 없는 표현 '~인하여' 등이 눈에 보이나 이는 독서를 많이 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여겨짐.

결론, 글 전체적으로 힘이 있고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잘 펼친 점이 이 글의 가장 큰 강점!"

이라고 아빠가 아이의 글에 코멘트를 달아줬습니다.


보이시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 잘 아는 것을 쓰면 글에 날개가 달립니다.

논술을 잘 써야 한다고 고민인 부모님들 많을 거예요. 저 역시 대입을 위해, 언론 고시를 위해 머리 싸매고 논술 잘 쓰는 법을 배우고 수도 없이 썼습니다. 목적이 있는 글을 잘 쓰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우리가 살면서 논술 쓰는 일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글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글쓰기를 즐기면 논술을 위한 바탕이 절로 다져지는 거예요.


글 쓰는 게 좋아서 "엄마, 저도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요!"라고 아이가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런 일은 흔치 않으니 기대 접으시고요. 적어도 글 써야 하는 일을 대면했을 때 아이가 "까짓것, 쓰면 되죠!"라고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아이의 글쓰기는 성공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 한 가지 더,

당장 대입을 앞두고 논술 준비가 급한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방법을 적용하기엔 조바심이 들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자유롭게 신나게 글 쓰는 일은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세요.

초등학교 때부터라면 더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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