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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an 20. 2023

난 찌질하다

“으이구, 이 찌질한 놈아.”

우리가 이렇게 부를 때마다 그는 씨익 웃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한껏 드러내며 찌질하게. 남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듯, 찌질한 걸 쿨하게 인정해 버리면 별 것 아니라는 듯. 지금은 두 딸의 아비가 되어 가장의 무게를 진중히 끌어안고 살고 있지만 ‘에헤헤’ 웃으며 허당짓을 일삼던 그는 분명 '찌질이 김00'이었다.

     

‘찌질하다’는 건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하다는 ‘지질하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하지만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발음해야 차지고 탱탱한 면발이 떠오르듯 ‘찌질하다’고 앞머리에 강세를 줘야 허술한 모양새가 제대로 전달된다. 이 말이 불현듯 떠오른 건 일상적이고 담백한 글을 감각적으로 잘 써내는 작가들을 보면서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지녔거나 내가 과거 했던 일을 여전히 해내면서도 개인적인 글마저 잘 쓰는 이들. 난 이를 보며 절대 칭찬하지 않는다. 잘 쓴 글을 잘 썼다 말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시기, 질투에 사로잡힌다. 숨을 참고 마우스 스크롤을 돌려 글 머리로 전진한 후 찬찬히 다시 읽는다. ‘끄응’ 그제야 막혔던 구멍을 틔워 숨을 몰아쉰다. 잘...썼.네. 쩝.

     

내 뭐라 평가하든 그들이 알 바 없고, 수백 만에 달하는 조회수가 줄거나 ‘좋아요’가 사라지지 않을 터다. 하트 모양 옆 숫자는 이미 풍성하게 넘치니 굳이 나마저 힘을 보태줄 필요는 없겠다. 못된 심보다. 다만 눈을 부라리고 글을 거듭 읽는다. ‘유쾌하다’, ‘신박하네’, ‘나는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누가 들을까 속으로 읊조린다. 글을 빤히 쳐다본다. 세모눈이 되어 가만히 째려본다. 난 왜 이렇게 쓸 생각을 못 했을까. 비교의 바닷속에 빠져 열등감을 끌어안은 채 허우적거린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해물찌개 거품처럼 찌질함이 내 안에서 용솟음친다. 참으로 찌질하다.

      

한때 시인 김소연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와 다른 글쓰기에 한동안 넋을 놨다. 무엇이 다른 걸까. 읽고 또 읽었다. 문장을 필사했다. 같은 주제로 내가 썼다면 어찌했을까. 그녀처럼 쓰고 싶어졌다. 그녀의 글투를 한껏 흉내 내고 나니 오랜 글벗이 금세 알아차린다. "이거 선생님 글 아닌 거 같아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짧지만 깊은 사색이 묻어난 글을 쓰기까지 그녀는 수도 없이 쓰고 지우고 사유하고 다시 쓰는 일을 무한 반복했을 터였다. 그녀는 인이 박이도록 글을 쓰며 자신의 어쭙잖고 어색하며 서투른 부분을 찾아 지웠을 거다. 과연 난 그만큼 글을 많이 썼을까.

     


글에서 찌질해 보이지 않으려 애쓸수록 참으로 못난 글이 나온다. 찌질하지 않은 척 글을 포장할 게 아니라 일상에서 찌질함을 걷어내야 한다. 보다 현란한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 몇 개를 이리저리 고쳐본들, 본판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던가. 못난 날 가리려 주렁주렁 붙인 장신구를 걷어내야 한다. 글 자체를 맑고 혈색 좋게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을 대하는 내 자세가, 글에 대한 태도가 건강해져야 한다. 생각을 수고로이 여기지 않고, 쓰고 고치는 일에 기꺼이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


찌질한 날 돌아보고 나니 갑자기 '찌질이 김00'이 생각났더랬다. 그를 찌질이라고 부른 게 미안해졌다. 우리가 뭐라 부르던 변함없이 소탈한 웃음을 짓던 그. 누가 그보고 왜 '찌질이'냐고 물을 때, 그는 말했다. "내가 찌질한가 보지 뭐. 가끔 봐도 내가 찌질하긴 해. 하하하." 그는 적어도 아닌 척하려 발버둥 치지 않았다. 잘난 척 하지도,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가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툭 던지며 멋쩍은 듯 웃었다.


맞다. 내 글은 찌질하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넘치고 인정받고픈 욕구는 크지만, 성찰은 얕고 사색의 범위는 좁다. 난데없는 자기 고백이랍시고 나 자신의 찌질함을 이렇게나마 인정한다. 이런데도 글이 나아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부터 불쑥 올라오는 걸 보니 난, 여전히 찌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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