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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an 26. 2023

고등학생 학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는 예민했다.

아빠 품에 안겨 곤히 잠들다도 침대에만 누이면 깼다. 남의 집 아이 등에 달렸다는 센서가 우리 아이에게도 있었다.


아이는 심약했다.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 누군가 곁에 서면 바로 일어났다. 소아과 대기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옆에 있는 아이가 "내 거야!"라고 빼앗으면 아무 말도 못 했다. 내게 와서 고개를 떨구고 훌쩍거렸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건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엄마를 찾고 또 찾았다. 울고 또 울다가 지쳐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울었다. 온 집안을 뛰어다니면서 통곡하는 탓에 어린 둘째도, 피곤에 절은 남편도 모두 일어나 소리쳤다.


당시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슈퍼우먼 워킹맘은 필수였다. 전셋값은 자고 일어나면 올랐고, 두 아이 양육 및 교육비는 나날이 늘었다.

'다음 중 21세기 대한민국에서 4인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은?'

답변에 '외벌이'는 없었다. 그런 중에도 아이는 엄마 자체를 호소했다. 문항에도 없던 '퇴사'를 선택했다.


내 인생 최대 변곡점은 출산과 육아였다.

커리어도 포기했고, 돈과 명예도 내려놨다. 이놈의 망할 인생이라고 자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론, 부엌에 서서 급히 밥숟가락을 뜨다 말고 아이 똥을 치운 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밥을 먹었을 때 울컥한 적은 있다. 매일 빨래를 널고 개면서 이러려고 내가 대학 나왔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정체성, 역할 가운데 최고는 엄마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학교에서 준 졸업 꽃다발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했다.

엄밀히 말하면 중등과정을 마쳤다. 아이는 고등과정까지 있는 대안학교를 다니는지라 우린 '졸업'이 아닌 '수료'라고 부른다.

겨울이 지나면 아이는 작년에 다닌 학교로 등교해 같은 건물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함께 공부할 친구들도 대부분 작년에 봤던 얼굴일 게다. 물리적으로 크게 달라질 게 없는데 더는 중학생이 아니라는 말에 기분이 묘해졌다.


중등 수료식

지난 3년간 아이는 훌쩍 컸다.

작년, 재작년 사진 속 아이가 실재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는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고,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엄마, 똥 몇 번 남았어요? 언제 나와요?"라고 묻지 않는다.

마트 가자고 하면 집에 있겠다고 하고, 친구 만나러 가는데 온 영혼을 털어 넣는다.


이제 고등학교 3년.

갈수록 아이가 제 방에 박혀 나오지 않는 시간이 늘어난다. 공부하다가, 노래하다가, 기타 치다가, 누워있다가, 잔다.


같이 놀자고 매달리던 아이가 그저 힘에 부쳤던 수년 전, 귓등을 타고 넘어가던 어른들의 말이 이젠 살을 파고든다. "어릴 때가 예쁘지." "그때가 좋을 때다." 그처럼 맞는 말도 없다. 참으로 듣기 싫었는데 그처럼 '진리'도 없다. 그토록 빠르게 날아갈 시간인데 품 안에 녀석을 더 고이 안았다면 좋았을걸. 지나고 나니 이제야 의젓한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금방이라도 대학 가겠다고 비행기 타고 날아갈 것 같아 난 홀로 앉아 궁상맞게 또 한 번 울컥한다.

앞으로 3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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