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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Feb 24. 2023

싱숭생숭, 새 학기 아이의 반 편성

왜 엄마 마음도 요동치는 걸까

아이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생글생글 잘 웃고 이야기도 잘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요 며칠 식탁 앞에서 말수가 줄었다. “무슨 일 있어?” “반 편성이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별로인지 모르겠어요.” 새 학기 반 편성을 앞두고 아이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인 듯했다. 아직 학교에선 공식 발표가 없었다. 다만 누구와 누구는 결코 같은 반이 되어선 안 된다, 담임선생님은 누구여야 한다 등 자기들끼리 이말저말 보태가며 조금씩 퍼즐을 짜 맞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녀석 얼굴빛이 심란한 게 이해가 됐다.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울렁거렸다. 바라는 친구들이 다른 반으로 갈까 걱정하는구나. 내심 같은 반이 되었으면 하는 위시리스트가 어미인 내게도 있었다. 이왕이면 아이가 좋아하는 K, 공부할 때 서로 자극이 된다는 H, 으쌰으쌰 반 분위기를 이끄는 Y, 한 번쯤 같은 반이 되었으면 했던 I. 어머니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 한 번쯤 같은 반 학부모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반면 제발, 좀, 이젠 얼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들도, 안타깝지만 있다. 아이가 내게 풀어준 반 편성 예상 리스트는 이 가운데 30%도 채 적중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봄방학이 되면 재빠른 엄마들은 미리 사전 작업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엄마들 사이에서 같은 반 되면 대략 난감해지는 ‘블랙리스트’도 엄연히 존재한다. ‘선생님, 우리 oo이 성향 아시죠? A랑은 찢어주시고 B랑은 꼭 붙여주세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L 엄마는 보통 진상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학교에서도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어찌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처음엔 듣고 놀랐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미의 용감한 한 마디로 아이에게 가장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나도 툭 까놓고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생각뿐. 차마 어미 치마폭에 아들을 싸매고 학교를 흔들어 제끼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싶진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매일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한다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어찌 세상이 내 뜻대로 되던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엄연히 존재한다. 학교는 그중 일부, 넓은 세상 가운데 아이가 만날 자그마한 한 귀퉁이일 뿐인데 벌써부터 걱정이 솟는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이들, 심지어 내 말을 곡해하는 이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함께 일도 해야 하는 게 인생이다. 학교라는 작은 영역 안에서조차 힘겨워할 아이를 노파심에 겨워 한다면 어찌 아이가 성장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밭도 넓어지고 복잡한 관계 속에 얽힌 매듭을 푸는 방법도 터득해 가는 거지. 

    


며칠 아이의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좀 좋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반 편성표를 머릿속에 기정사실로 만들고는 혼자 이리저리 이름을 옮기고 붙이기를 여러 번, 그사이 속상해하던 아이의 얼굴은 조금씩 밝아졌다.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 아직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냥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열심히 하면 돼요. 애들 좀 이상하게 굴면 내가 잘 중재해 보죠 뭐.” 아, 아무리 속 끓여봐야 내 손으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았구나. 주변이 바뀌는 것보다 내가 달라지는 게 빠르고 현명하다는 것도 말이야.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싸해진다. ‘녀석 벌써 인생이 고되다는 걸 안 거니?’ 아이가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작은 일까지 노심초사 안절부절못한다. 부모여서, 부모니까. 왜 엄마 나이는 아이와 함께 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 걱정보다 더 빨리 깨우치고 더 많이 성장한다. 이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고 우린 고민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늙어가는 거겠지.



이제 곧 아이는 기나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 학기를 시작한다. 얼음이 녹고 햇살이 따사로워지는 3월은 낯선 환경만큼이나 교실도 춥다. 새 학기마다 차가운 의자에 앉아 오들오들 떨던 기억이 떠오른다. 곧 봄바람이 불 게다. 새 친구들과 거리도 가까워질 테고. 그때까지 아이 마음이 춥지 않기를, 감춰진 친구들의 매력이 속속 드러나 그간 걱정이 무색할 만큼 매일 학교 가는 기쁨이 새로이 넘치기를. 

아들, 누가 알겠어. 새로운 베스트프렌드가 생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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