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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pr 01. 2023

그때가 너무 그리워서

비록 뒤통수만 보일지라도

"엄마, 제 얼굴 나온 사진이 왜 없어요?"

아이가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며 내 휴대폰을 뒤적인다. 

"당연히 없지. 있을 리가 있겠어?"


아이들은 평소 사진 촬영을 거부한다. 내가 휴대폰을 들어 올릴라 치면 번개 같은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10대 정점을 지나고 있는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라고 남편이 거든다. 자신도 그러했다고. "그럼 당신이라도 나랑 찍읍시다!" 내가 셀카 모드로 화면을 돌리면 남편 역시 아이들 곁으로 순간 이동한다. 거참, 평소 그리 잽쌌던가.


우리 집 세 남자는 사진 찍히는 걸 심히, 매우 싫어한다. 귀찮다나? 가족 여행 가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풍광에 마음을 뺏기고 있노라면 그들은 내 사진 속 모델이 될까 두려워 일찌감치 자리를 뜬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다. "엄마, 제발 조옴!" "하, 여보, 또 찍어?" 

흥! 그들은 모다. 추억이 결코 머릿속에 박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년 전, 동네 안과 갔을 때다. 대여섯 살은 되어 보이던 남자아이가 엄마를 지렛대 삼아 주변을 맴돌았다. 제 순서를 기다리는 게 지루한 게 분명한데 아이는 떼쓰거나 큰 소리로 짜증 내지 않았다. 아이 인상이 엉크러질 때면 엄마는 아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러면 아이 뒤통수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내 자리에서 아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는 분명 빙긋 웃고 있었다.


며칠 전, 아침 일찍 카페로 나섰다. 테이크 아웃을 하는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한 엄마가 딸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 작은 아이는 유치원 가방을 멨다. 세 모녀는 힙하게 카페 바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나눴다. 커피와 주스, 샌드위치와 수프. 무엇이 그리 재미있을까. 시끄럽거나 소란스럽지 않은 세 모녀는 멀리서 봐도 즐거웠다. 그녀들 덕에 삭막한 카페엔 온기가 흘렀다.  대한민국 수도권 카페 한 구석의 아침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 한 장면처럼. 단란한 가족이 풍길 수 있는 따스함이 좋아서 하던 일을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직 내 키를 넘지 않았던 아들 둘을 양손에 꼭 쥐고 매일 함께했던 나날들. 내게 훈장처럼, 보석처럼 빛나던 존재였는데 그땐 녀석들을 24시간 챙겨야 할 커다란 짐 두 개라고 치부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을 내 표정은 어땠을까. 짜증에 겨워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던 순간이 있었을 거다. 고운 아이들 얼굴 아래 까뭇한 그림자가 드리웠을지도, 곁에서 누군가는 '저렇게 조그만 아이들한테 웬 잔소리?'라며 인상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저들처럼 우아하게 아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 거라 믿고 싶다.

꼬맹이었던 그때


10대 아이들과 마흔 넘은 어미의 일상을 흐르는 속도는 같고도 다르다. 이제 우리 사이엔 예전과 같은 시간과 공간의 교집합이 현저히 줄었다. 그마저 점점 작아지는 게 체감돼서 자꾸만 남의 아이들을 눈에 담는다. 아직 자랄 날이 많이 남은 아이들 속에서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 애쓴다. 행복했던 느낌만 아련히 남아 이제 우리 집 사람들이 뭐라 하든 카메라를 든다. 이 순간이 지나면 영영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단호하게 버튼을 누른다. 내 휴대폰 저장 공간엔 오로지 시커먼 뒤통수 3개만 가득하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이 머지않아 내 품을 떠나 한없이 그리워질 때면 비록 뒤통수만 봐도 아이들의 눈, 코, 입이 온전히 다 기억될 거라고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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