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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Nov 20. 2023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의 함정

코로나 시기, 온라인 세상에 강의가 넘쳐났다. 무료-라 쓰고 본격 고가 강의를 위한 미끼 상품이라 읽히는- 강의, 혹은 1~2만 원 안팎의 저렴한 강의가 집안에 머물며 갈 곳 없는 이들을 유혹했다. 그런 강의 중 대부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당신도 물론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해보기 전엔 알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나와 맞는 일인지 아닌지. 사람에겐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니 단 한 번의 강의로 인생 역전 스토리가 펼쳐질지 누가 아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말을 들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정말, 모든 사람이, 모든 일에 다 능할까?


당시 글쓰기는 유행 같았다. 코로나 악재를 타개할 무기가 글쓰기처럼 보였던지, 온라인에 글쓰기 강의, 모임이 넘쳐났다. 혹자는 '글쓰기 강의 시장이야말로 극강의 레드오션'이라고 했다. 쓰는 직업에 몸담았던지라 눈은 절로 글쓰기 강의로 향했다. "일단 써라. 쓰기만 하면 한 달 만에 책을 쓸 수 있다." "조금만 배우면 당신도 나처럼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모임을 열어 돈을 버는 건 오프라인 현장보다 쉽다." "내 방법대로만 하면 당신도 일주일 만에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어려운데, 정말 그게 그리 쉽게 되나? 여러 모양으로 글을 써 봤어도 쓸수록 어려운 게 글이어서 쓸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고, 열두 번도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데. SNS 여기저기에서 나타나 호언장담하는 이들을 보면서 의아했다. 어찌 저들은 내가 모르는 비법을 안단 말인가, 나는 왜 그리 쉬운 방법을 모르고 이토록 괴로워하는가. 나의 무능하고 한심한 모습에 부끄러웠다.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류의 말을 믿지 않는다. 누구나, 모든 사람이, 그리 짧은 기간 안에 블로그로 수익을 내고 브런치작가가 뚝딱 되지는 않는다. 평소 일기를 꾸준히 썼거나, 어려서부터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하거나, 소싯적 작문으로 상을 타봤거나, 글을 써 본 적이 없어도 책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 글쓰기를 통해 크고 작은 결과를 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써서 목적한 바를 이루겠다'라며 글을 쓰고 기획을 하고 실행한 사람들도 눈에 띄는 열매를 맺었다. 


'다들 독서모임을 여는데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어떤 이는 고가의 관련 과정을 수강하고 모집 안내글을 SNS에 올렸다. 어떤지 봐 달라며 내게 SNS 링크를 보냈는데 암담했다. 오탈자 가득한 글 속에는 본인도 무엇을 콘셉트로 왜 독서모임을 여는지 알 수 없다는 증거가 가득했다. 결국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는 온라인 세상에서 사라졌다.


가끔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에 의미를 둔다는 말을 듣곤 한다. 실패해도, 조금 못 해도 괜찮다는 위로와 격려의 뜻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일견 그렇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모든 과정이 성공적인 결과를 담보하지 않지만, 괜찮은 결과 뒤에는 성실한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결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도 정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죽을힘을 다해 과정에 임했다면 얻는 게 있다. 이럴 땐 과정에 의미가 있다. 자신의 임계치가 얼마나 되는지, 2% 부족함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눈물 콧물 쏙 빼며 애쓴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찌 더하고 빼면 좋을지 과정 속에서 우린 배운다. 이럴 땐 분명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 맞다.


괜찮다는 어설픈 위로, 시도만으로도 족하다는 자기만족, 그래도 안 한 것보다 낫다는 일종의 정신 승리로 퉁쳐버리면 과정의 빈틈에서 발생한 실패의 교훈마저 놓치고 만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애쓰고 땀 흘려야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떠한 개선과 노력 없이 ‘다음에 하면 더 잘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사탕발림의 위로는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하지 않고는 알 수 없고 부딪혀봐야 아는 것 맞다. 한 발짝 뗄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일에 매진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도 이왕이면 긍정적인 결과를 내겠어,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겠어,라는 다부진 태도를 챙기고 싶다.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깨닫는 능력을 장착해야 도전하고 실패하는 무한 루프 속에서도 언젠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11월 말, 행여 어설픈 위로와 과도한 낙관 속에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일기장을 뒤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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