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시작된 지 보름, 연말을 생각하면
"형아, 시험 잘 봤어?"
"몰라."
"똥 쌌구나?"
"발표는 잘했니?"
"뭐 그럭저럭요. 그래도 똥은 안 쌌어요."
우리 아이들은 요즘 말마다 '똥을 싼다.' 화장실은 아침에 다녀온 것 같은데 그리 '똥' 이야기를 자주 하는지 그놈의 똥싸배기들. 왜 자꾸 '똥, 똥' 거리느냐고 물어보려다 가만 듣고는 알아챘다. '일을 망쳤다'는 뜻의 은어라는 것을. 어제 아이들 가지고 온 학교 이어북(yearbook)에는 크고 작은 실수가 보였다. 글의 줄간격이 안 맞고, 제목이 본문을 덮었으며, 동일한 내용의 글이 두 번 반복됐다. 이어북을 두고도 아이들은 말했다. "이번에 이어북팀 아주 똥을 쌌더라." 지난주 간만에 집에 놀러 온 막냇동생도 그러했다. 저녁 먹고 가라는 내 말에 동생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똥 치우러 가야 해. 옆 팀이 어찌나 일을 대충 했던지..."
헤밍웨이도 그랬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이를 두고 '초고는 쓰레기', '초고는 걸레'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원문은 이러하다. '초고는 똥이다.' 하얀 종이 위에 글을 시작할 땐 뭐라도 써보자는 마음으로 쏟아낸다. 노벨문학상을 탄 대가의 말을 읊조리면서. 한 바닥 글을 채웠다는 안도감은 잠시, 한숨 고르고 다시 읽어보면 그가 툭 내뱉었을 말이 절감된다. 참으로 푸지게도 싸질렀구나. 어찌 수습할꼬.
시작과 동시에 완벽한 모양을 생각하면 일의 진행이 어렵다. 일단 시작하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중요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일을 망칠 계획은 없었을 거다. 시험을 본 아들도, 이어북을 만든 아이들도, 열일한 회사 동료도. 하다 보니 의도와 달리 아름답지 못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될 뿐.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정을 돌아보는 자세다.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을까, 방향부터가 문제였을까, 화룡점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을까. 일의 잘 되고 못 되는 한 끗 차이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데 대부분 마지막 점검을 소홀히 하는 경우 결과가 아쉬워진다. 일하느라 지쳐서 후딱 끝내고 싶기도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간에 쫓겨 급히 매듭을 질 수밖에 없을 때 그러하다.
지난해 말을 돌아보며 연초 계획을 세웠다. 잘한 일에 기뻤지만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눈에 자꾸 밟혔다. 올해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지난해 거뭇하게 남긴 흔적을 올해는 말끔히 닦고 반질반질 윤을 내겠다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고요한 시간을 갖고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2시간을 내겠다고 빨간 볼펜으로 반듯하게 적어놨다. 어느덧 1월 중순. 눈을 떠도 감아도 어두운 아침, 등이 시려서 이불을 자꾸 턱까지 끌어올린다. 춥다, 귀찮다, 조금만 더를 무한 반복하면서 침대에서 꾸물거린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헉, 똥 쌌어. 대부분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눌려 머릿속으로 부담만 쌓다가, 짧은 시간 후다닥 일을 해치우려는 데서 내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연초 효과의 유효기간은 보름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인가. 이러다가 연말을 망칠 순 없다. 그래서 몇 자 적는다. 똥 싸지 않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