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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Dec 15. 2023

글 잘 쓰는 사람들의 특징

기자 초년병 시절, 까칠한 선배가 있었다. 일도 다부지게 잘하고 술도 잘 먹고 관계 맺는 일도 능수능란해서 선배가 틱틱거려도 할 말이 없었다. 병아리는 딱히 잘못한 게 없어도 괜히 주눅 들기 마련이다. 낯선 환경에 아는 건 없고 하는 일은 서투르니 그저 열심히 하고, 아니다 싶으면 고개를 숙이는 게 최선이다. 어느 날 그가 내 기사를 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어려서 책을 많이 읽었나 봐."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뭐가 또 문제인가. 눈치를 살피는데 지나가듯 덧붙이는 말. "기사에 책 많이 읽은 티가 나."


글쓰기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이들이 찾아다. 나 역시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지만 풍월 읊는 수준의 시간은 쌓였는지 글을 읽으면 보이는 게 있다. 글은 좀 서툴러도 솔직하게 쓰는 사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 글 쓰는 게 재미있는 사람, 잘 쓰고 싶어서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 사람, 기똥찬 표현에 욕심을 내는 사람, 한두 바퀴 글을 꼬아 '내가 누구인지 절대 알려고 하지 마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 내 눈을 끄는 건 글을 처음 써 봤다는 이들이다.


초등학교 이후, 글다운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은 주로 일기를 쓴다. 이들에겐 '쓰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글이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칼럼인지는 중요치 않다. 자신의 이야기가 글이 되는 경험은 아드레날린이 솟는 일이다. 그중에도 잘 쓰는 이들이 있다. 처음 썼다는 말이 무색하게 글이 자연스럽다. 과장되지 않고 우악스럽지 않아 읽어 내려가는데 걸림이 없다. 진짜 처음 쓴 게 맞을까. 궁금한 건 물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 썼던 게 언제일까요?" "글쎄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건 하세요?" "해 본 적 없어요." 딱히 답을 얻지 못한다. 필살기 질문을 던질 차례다. "책은 읽으세요?" "네, 저 책 읽는 거 좋아해요."


글을 쓰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다. 글쓰기에 할애한 물리적 시간이 적어도 잘 쓰는 이들의 비기다. "바쁜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핵심 질문에도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는 이들도 있다. 마지막 남은 질문. "예전에는 읽으셨어요? 아니면, 아예 책 따윈 안 보세요?" "아뇨. 대학 다닐 땐 읽었어요." "어릴 때는 많이 읽었죠." 빙고! 그럼 그렇지! 살면서 활자와 가까웠던 경험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글을 처음 써 본다고 하면서 진솔하게, 술술 잘 읽히게, 읽는 사람 마음이 몽글해지게 만드는 이들의 특징이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다가 오랜만에 시작하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글쓰기의 오묘한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쓰는 행위를 그리워한다. 어느 때고, 어떤 형태로든 다시 펜을 들고 자판을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 1년간 글을 쓰지 않아 걱정이라던 A가 어렵게 글쓰기 모임에 다시 동참했다. 그리고 수줍게 글을 올렸다. 어떤 표정일지 훤히 다 보였다. 그의 부끄럼이 행간마다 숨어있는데 읽고 나서 기뻤다. 그가 내 앞에 있었다면 물개박수를 쳤을 게다.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쓰느라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글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오래, 많이 생각한 흔적이. 세심히 관찰한 결과가. 일상에서 여러모로 느끼고 경험했던 오만가지 일들이 사색을 거쳐 글에 나왔다. 꾸며 쓸 여유조차 없어 글은 소박했다. 하지만 그간 사느라, 생각하느라 애쓴 게 그대로 나왔다.


B도 그러했다. 다른 일이 있어 조금 쉬었다가 글 쓰겠다고 한 그는 3개월 후 정말로 찾아왔다. 지금은 바빠서,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다양한 이유로 글쓰기를 멈추고 돌아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가 쓴 글은 3개월 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 사이 뭘 하신 거예요?" 놀라움에 농을 섞어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만히, 깊이 사색하려고 애썼어요." 작가들의 선생이라는 윌리엄 진서가 말했다. 글쓰기는 생각 쓰기라고. 이 말이 사실임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내가 알려준 것 이상으로 다양한 주제를 자기 스타일로 변주해 쓰곤 했다.

 


옛말에 글을 잘 쓰려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고 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헤아려 생각하라는 말이다. '다상량'은 흔히 '많이 생각하라'고 알려져 있지만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가 쓴 한자를 따지면 단순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글에 대해 묻고 답하며 의견을 나누고 고쳐쓰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많이 들어 고리타분한 말이 됐지만 글 잘 쓰겠다고 하는 이들 중에서 이에 벗어난 경우는 없었다. 이 세 가지를 하지 않으면서 글쓰기가 나아지는 사람도 못 봤다. 반면 글 좀 썼다고, 묻기 전에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들은 기대보다 글이 별로여서 실망시키곤 한다. '내 글 좀 아는데...'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태도를 보면 '아...' 탄식이 나온다. 글이 나아지려면 힘들겠구나. 내 글이 어떠한지 아는 사람은 이런 말을 쉬이 하지 못한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뻔뻔하기 어렵다. 글 잘 쓰는 대가일수록 "여전히 마음에 드는 글을 쓰지 못했다"며 읽고 쓰고 사색하는 일에 골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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