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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Feb 11. 2021

명절 LA갈비는 남편이 한다

"며늘아, 갈비가 아주 맛나다!"

"니 아무것도 해 오지 마라. LA갈비면 됐다!"


명절 일주일 전, 시어머니께 전화드리면 하시는 말씀.

"엄니!(난 시어머니를 이렇게 부른다) 제가 안 하면 또 혼자서 다 하실 거잖아요. 제가 갈비랑 잡채랑 전 조금 부쳐갈게요."

"됐다! 식구 몇 된다고. 니 갈비만 해와라. 딴 거 해오지 마라!"

음악을 리플레이하듯, 고부간 대화는 매번 똑같다.


외며느리로 산 지 16년째지만 난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 전날 음식하러 시댁에 가지 않는다.

결혼하자마자 두 아이를 낳고 일도 하는 며느리를 생각해서 어머니는 그저 명절 당일 오라고 하셨다.

"음식 할 것도 읎다. 밥하고 국만 끓일기다."

시어머니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수년간 설날 아침 시댁에 갔다. 어린 두 아들 챙기고 선물만 들고 가도 바빴다. 그런데 막상 가 보면 어머니는 밥, 국 말고도 나물, 전, 잡채, 갈비까지 한 상을 차리셨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엄니, 설날 전날 제가 음식하러 갈게요. 몇 시에 갈까요?"

"됐다. 애들 데리꼬 오면 정신없어 일도 몬한다. 느그들 밥 차려 주는 것도 일이다."

"아... 그럼 제가 음식 하나 해 갈게요."

"니 뭐할 줄 아는데? 할 줄 아는 게 있나?"


음식 못하는 며느리 사정 뻔히 아시는지라 뭘 만들 줄 알긴 아나 싶으셨을 거다. 그 해 잡채를 시작으로 명절마다 조금씩 음식을 해 갔다. 잡채만 해도 큰 일 했다고 생각하는 시부모님 덕에 몇 해를 잡채로 버텼다. 30분이면 해 버리는 '무수분 잡채 만들기' 방법을 굳이 어머니께 알려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제 발이 저렸다. 어머니는 여전히 한 상을 차리시는데 면목이 없었다. 갈비찜을 해 가기로 했다. 어느 모임에 갔는데 갈비찜은 그냥 고기 핏물 빼고 양념 잘 만들어서 밥솥에 찌면 된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헉, 그거야 음식 오래 해 본 사람들 말이지. 당신, 갈비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아?"

'요알못' 아내의 말을 듣고 남편이 어이없어했다. 안 되겠다 싶은지 본인이 팔을 걷어붙였다. 핏물을 수차례 빼내고 인터넷을 검색해 최적의 양념을 만들었다. 아, 갈비찜이 그냥 다 때려 넣고 찌는 게 아니었구나.


남편이 정성 가득 만든 갈비찜을 들고 시댁을 가는데 문제는 남편이 만든 갈비가 너무 맛있다는 데 있었다.


며늘아, 갈비가 아주 살살 녹는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아... 아버님의 칭찬에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 능구렁이 남편이 치고 나온다.

"아버지 큰 며느리, 이제 요리 좀 해요. 얼마나 잘하는데!"

헐... 더 할 말이 없다.


몇 해 전부터 '요리 잘하는' 큰며느리의 명절 메뉴는 'LA갈비'로 바뀌었다. 갈비찜은 번거로우니 LA갈비를 재워 시댁 가서 굽자는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LA갈비 역시 남편의 몫이다.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남편은 고기도 잘 고른다. 내가 골라온 LA갈비를 영 탐탁지 않게 여기더니 어느 날부터 고기도 본인이 직접 고른다. 핏물도 빼고 양념도 재우고. LA갈비 맛은...


이야~ 울 며느리 LA갈비도 기가 막히다. 입에서 녹는다 녹아!
며느리 어찌 이리 음식을 잘 하노!


"아, 네... 아버님..."


매해 LA갈비는 성공적이다. 이젠 손맛이 바뀌면 어른들이 아실까 싶어 내가 한 번 해 보겠다는 말도 못 하겠다. 남편은 명절이면 LA갈비를 양념에 잰다. 이 한 마디와 함께.

"얘들아, 알지? 이건 '엄마'가 한 거다. 할아버지한테 아빠가 했다고 말하면 안 돼. '엄마'가 한 거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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