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Feb 01. 2021

커피메이커, 15년 전 기억을 소환하다

옛 것의 발견

"뜨거운 커피로 다시 갖다 드리리다"


나이 지긋한 백발의 미국인 할머니가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내어준다. 백 년은 족히 된 미국 주택의 앤틱한 다이닝룸에서 커피 한 잔. 그것도 커피메이커에서 내려진 원두커피. 코로나 집콕 라이프 중 영화 감상의 한 대목에서 예상치 않게 침이 고인다. 유행 지난 커피메이커로 만들어진 커피 맛은 분명 예상되는 것인데, 갑자기 빈티지 감성이 올라온다. 집에 있는 캡슐커피, 드립커피, 봉지커피 말고, 커피메이커로 내려진 그 블랙커피. 어떻게 지금 안 될까. 


영화 <war room> 스틸컷


아, 우리집에도 커피메이커가 있었어! 


갑작스럽게 올라온 커피욕구에 난감해진 것도 찰나, 냉장고 위 수납장을 열었다. 짱아지 담금용으로 쓰이는 커다란 유리병, 김치통, 손님용 수저세트 등 자주 쓰지 않아 기술적으로 쌓아놓기만한 살림살이가 가득하다. 빼곡히 쌓인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고 나니, 저 구석, 하얀 커피메이커가 보인다. 빙고! 진정 반갑다.

 

십오 년 전, 대학 친구가 결혼선물로 사 준 커피메이커. 그 당시에 커피메이커는 신혼생활에 멋을 더해 줄 소형가전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봉사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는 작열하는 여름 태양 아래 집을 짓고 녹초가 돼 눈꺼풀 들 힘조차 없던 아침에도, 챙겨온 이어링을 매일 바꿔달았다. "난 이걸 바꾸지 않으면 꼭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아." 구석에 쳐 박혔던 커피메이커를 꺼내면서 옛 친구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간 연락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네. 문득, 동그랗고 하얀 얼굴의 그녀가 보고싶다.


하얀 커피메이커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곳곳에 누런 기름때가 점점이 박혔다. 물을 넣는 부분의 뚜껑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없고, 내려진 커피를 담을 유리주전자도, 커피 거름망도 없다. 그 유리주전자, 수 년 전 설거지하다 깨졌던 기억만 설핏 난다.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커피메이커를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온 내가 용하다. 언젠가 다시 쓸 것이라는 생각, 무엇보다 바쁜 주말 먼 곳까지 나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왔던 친구의 환한 미소가 남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소독수를 뿌려 깨끗한 행주로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누런 기름 점박이들이 사라져간다. 꽤 새 것 같다. 실상 많이 쓰지는 않았었다. 아침마다 향긋한 커피 향기 맡으며 출근 준비를 하기엔 현실 속 신혼부부는 너무 바빴다. 곧 이은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는 나로 하여금 커피를 즐길 수 없게 만들었다. 앉아서 밥 먹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전투적이었던 육아기간, 커피는 사치였다. 좁은 부엌에서 가장 먼저 치워진 건 커피메이커였다. 그 자리엔 젖병소독기가 놓였다.


새 것이 된 커피메이커. 물을 채우는 부분은 뚜껑이 없어 키친클로스로 덮었다.


이후 일하는 아내와 엄마로 살면서 내 능력 이상의 에너지를 썼던 탓일까. 알러지가 올라왔다.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제 손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만큼 자라고, 내 몸을 움직여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줄어들자 조금 살만 했다. 참았던 커피를 마실 수 있을 때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커피가 트렌드였다. 커피 마니아들은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계를 들이거나 캡슐커피 머신을 샀다. 핸드 드립도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방법이었다. 


커피를 사랑하지만 나만을 위해 비싼 기계를 살 순 없었다. 캡슐커피도, 핸드 드립을 위한 각종 장비들도 언감생심이었다. 모카포트를 살까 말까 고민하기를 여러 번, 그 돈으로 아이들 먹일 고기를 더 사야겠다 싶어 마음을 접었다. 커피에 대한 애정만큼 집에서 즐기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한 친구가 덜컥 캡슐커피 머신을 보내왔다. 제 돈으로 캡슐 하나 못 사는 나를 위해 이번에는 남편이 나서서 캡슐을 사들였다. 카페갈 돈도, 커피 도구를 사는 것도 나에겐 그저 사치 같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커피를 즐기려 애쓰는 동안 왜 커피메이커를 꺼내 쓸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주방 구석구석을 뒤져 커피여과지와 원두가루를 찾아냈다. 대충 높이가 맞는 머그컵도 찾아 유리주전자 자리에 대신 끼웠다. 플러그를 꼽고 전원버튼을 누르니 '지익~' 물 끓는 소리가 난다. 어머, 작동이 되네. 또르르...커피가 가는 물줄기처럼 떨어진다. 선물받아 보관만 했던 헤이즐넛 커피향이 온 집안에 퍼진다. 예전에 정말 유행이었던 헤이즐넛 커피, 이제 한물 간 옛날 커피같아 쳐박아 놨는데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다. 



커피가 다 내려졌다. 뜨겁고 향기롭다. 맛은, 음...생각만큼은 아니다. 헤이즐넛 커피는 맛이 향을 못 따라간다.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같다. 그래도, 영화의 감흥을 살려 커피메이커로 블랙커피를 내려마실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최근 유행이라는 세련된 방법으로만 꼭 커피를 만들 수 있던 건 아니었는데 요즘 것, 새 것에 사로잡혀 내가 갖고 있는 것, 옛 것을 등한시해 왔다는 생각이 스친다. 


비단 커피 뿐이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작은 일을 시작하더라도 필요한 물건부터 사고 보는 습성이 내게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나에게는 누릴 만한 많은 것들이 있는데 바깥 세상의 '파랑새'만 찾고 있었던 건 아닐런지.


당분간 아침마다 이 블랙커피를 즐길 계획이다. 내게 숨겨놓은 보물을 찾은 기쁨,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이 내게 있어 누릴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기쁨. 옛 것의 발견, 코로나가 알려준 삶의 또 다른 행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워하거나, 달라지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