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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Sep 04. 2021

이제 다시는 글 쓰지 않겠어

다시는, 절대, 글을 쓰지 않겠노라 했다.

10년 넘게 해 온 기자의 글쓰기는 고됐다. 기사의 파급효과는 컸고 ‘박기자’로 불릴 때마다 어깨가 으쓱했지만 때론 지겨웠고 고통스러웠다. 기자를 그만두며 다짐했다. 글로 하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하지 않겠다고.


그러고 나니 할 게 없었다. 농담 삼아 마트 계산원을 도전해볼까 했지만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땀 흘려 돈을 벌고 싶다고 한들 그 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해 전 어느 날, 아이들 운동을 데려다주고 끝나기를 기다리며 카페에 앉았다. 어디를 가든 들고 다니는 건, 노트북과 바인더, 펜, 그리고 책. 꼭 써야 하는 글이 있던 건 아니었다. 원고 의뢰가 들어왔던 것도, 기사 마감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일상을 끄적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무슨 글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글을 쓰다 고개를 들으니 어느새 2시간이 흘렀다. 헉, 늦었다. 아이들이 기다리겠다. 세상에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카페 안은 시끄러웠다.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카페에 사람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고 글 쓰는 일에 몰입해 있었다. 마치 진공 상태 속에 머무른 듯,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 멈추어 있는 듯 느릿느릿 그렇게 혼자 글을 쓰고 있었다.


무언가 몰입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몰입할 때 사람은 가장 행복감을 느낀단다. 아, 난 글을 쓸 때 몰입하는구나. 머릿속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과정, 형체 없이 나를 괴롭히던 상념들이 글자로 정리되는 느낌, 글을 다 쓰고 나면 느껴지는 뿌듯함, 무엇보다 쓸모없어 보였던 생각들이 잘 꿰어져 삶의 성찰로 열매 맺을 때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 글 쓸 때 난 행복했구나.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밖에 없어서 초라했다. 왜 하필, 세상 하고 많은 일 중에 글 쓰는 일을 택했을까. 다른 생산적인 일 많고 많은데, 시간과 에너지 쏟아부어서 고작 글 몇 개 쓰고 받는 월급도 쥐꼬리만 한데.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기자를 했을까. 기자로 부귀영화는커녕 인간다운 양질의 삶조차 영위하 어렵다는 확신이 가득 찼다. 자조 섞인 자문자답이 매일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나에게 글쓰기는 기사 작성이었다. 날카롭고 반듯하고 강력한 기사를 쓰지 못한 날이면 자책하고 과소평가하느라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기사가 글의 전부가 아닌 것을. 그제야 기자로서의 일과 진짜 글쓰기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참다운 글쓰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걸, 글쓰기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이토록 간단한 사실을 깨우친 순간, 내가 할 일이 다시 보였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게 글쓰기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도 글쓰기였어. 이제 천천히 내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도움될 일을 하면 되겠네.


제2의 글쓰기, 내 인생 본격적인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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