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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ct 02. 2021

뇌즙을 짜내 글을 쓴다

"뇌즙을 짜낸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선 심혈을 기울여 글 쓰는 행위를 이리 표현했다. 어릴 적 엄마는 한약재를 면포에 싸 막대기로 마지막 즙까지 짜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끔 글을 쓸 때 이렇게 생각을 쥐어짠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한 방울, 뇌 깊은 속에 숨겨진 성찰의 정수를 끄집어내기 위해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쓰다 지우다 또 쓰고 또 지우는 일을 반복할 때 말이다.


© johnhain, 출처 Pixabay


글을 쓴다는 게 늘 기쁘진 않다.


머릿속에 얽혀버린 생각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할 땐 실뭉치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어찌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써야지' 생각하는 그 순간, 바로 시작하지 못한다. 제대로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 재료들을 만나면 더더욱 그렇다. 날 것 그대로 재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불맛과 아주 조금의 양념만으로 일류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일 게다. 누구나 "아!"라는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맛깔스럽고도 감칠맛 나는 글 말이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어쩌면 뭘 쓸까,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생각 그대로가 글이 되어 춤추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한때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다만 메모만 끄적끄적, 속말을 중얼중얼 남긴다. 생각이 켜켜이 쌓이면 곰팡내가 나는 경험을 했기에, 그렇게 내 안에서 생각이 곯아 터져 나오기 전에 뭐라고 적어놓는다.


© markfb, 출처 Unsplash

세상에는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단다.

생각을 적는 사람과 생각만 하는 사람.

사소한 일상일수록 글로 남겨 자신의 역사를 만들고 영향력을 공유하는 사람과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 바람으로 흘려보내는 사람.


그래서 쓴다. 더는 내 일상이 그저 날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 써 버린 글을 읽으며 입맛만 다시다 끝내지 않기 위해. 10년 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이런 방법도 있다"라고 알려주기 위해. 글과 씨름하는 과정이 때로는 뇌즙을 짜듯 힘겹지만 계속 쓰다 보면 어느새 완성된 글을 보는 성취감과 희열을 알기에.


이제 조금 속도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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