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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감기는 꽤 달콤하다

by 오르 Feb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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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의에서 일상 속 감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수강생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시댁에 김장하러 가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그 정도로 몸이 힘든 건 아니었는데, 갈 때마다 '그래, 애는 언제 생기니? 요즘 노력은 하고 있니?'라고 묻는 시어머니 보는 게 싫었어요." 거짓말까지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시어머니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단 나았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시댁,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시'라는 한 글자가 덧대어질 때 즐거움, 반가움, 기쁨이 밀려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기혼 여성에겐 불편, 짜증, 분노가 더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예외가 있는 법. 나도 그중 하나여서 시어머니가 친정엄마보다 편하다. 물론 시댁에 가는 게 친구네 수다 떨러 가는 것만큼 마냥 설레지는 않지만 그리 고역일 것도 없다. 갈 때마다 갖은 반찬 만들어 챙겨주고, 일하랴 아이들 키우랴 애쓰는 며느리 사정을 헤아리는 어머니 덕이다. 명절에도 가족끼리 식사할 뿐 제사 지내지 않아서 음식을 거하게 준비하지 않는다. 며느리의 일천한 요리 솜씨 탓에 어머니는 여전히 음식의 대부분을 맡는다. 명절 전날 음식 준비하러 오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빈 손이 부끄러운 며느리는 사방팔방 도움을 받아 갈비찜이나 잡채, 전을 준비해 명절 당일 들고 간다.


이번 설 연휴엔 복병이 있었으니, 호되게 앓은 감기였다. 연휴 시작 며칠 전, 슬금슬금 기미가 보이더니 하루 이틀 사이에 증상이 심해졌다. 연로한 시부모님에게 감기를 옮길 순 없었다. 설날엔 반드시 완쾌되리라는 믿음으로 연휴 내내 침대에 누워 몸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졸리면 잤고 배고프면 먹었고 심심하면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그간 읽지 못한 소설 <파친코>를 펼쳤다.


삼시세끼 끼니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마치 집에 혼자 있는 것처럼 지냈다. 가족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엄마는 빨리 나아야 하니까! 큰 죄책감 없이 남편이 차려주는 밥을 먹었고, 간간이 안방에 들러 안부를 묻는 아이들에게 빙긋 웃어줬으며,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소설 속 세계에 빠져들었다. 며칠간 난 주인공 '선자'를 떠올렸다. 지극히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온 힘을 다해 성실히 하는 그 여인을. 평생 삶의 의지를 뜨겁게 불태운, 존경스러운 그녀를.



연휴 말미, 기력이 조금 회복됐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 정리를 시작했다. 책상과 침대 머리맡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책을 옮겼다. 책장에 틈 없이 빽빽하게 꽂혀있던 책도 꺼냈다. 다 읽겠노라 욕심부리던 책들을 분류했다. 꼭 읽고 싶으나 아직 열어보지 못한 책, 소장 가치가 있는 책, 다시 한번 훑어보고 떠나보낼 책, 수년을 보관해도 절대 다시 펼치지 않을 책. 설렘을 안고 품에 들였던 책을 버린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더는 의미 없을 책에서 과감히 애정을 거두기로 했다. 일제 강점기, 남편이 감옥살이를 사는 상황에서 길거리에 나가 김치를 파는 선자에 비하면 이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살아보겠다고, 적어도 너저분한 책상 위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 고민만 하다 한 해를 끝내진 않겠다고, 찬찬히 책을 꽂으며 읊조렸다.


소설 두 권을 독파해서 뿌듯했고, 불꽃처럼 살다 간 주인공을 만나서 행복했다. 그녀가 내게 삶의 열정과 의지를 불 지펴줘서 기뻤다. 무엇보다 조금은 새로워진 마음으로 오랫동안 먼지 쌓인 책상을, 책장을, 내 마음을 비워내서 홀가분했다. 명절에 가족들에게 적잖은 폐를 끼쳐 미안했지만 아주 많이 그러한 건 아니어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할 의무감에서 비껴 서 있으니 예상치 못한 해방감마저 밀려왔다. 시댁 가는 게 죽을 만큼 싫은 건 아니었는데 '시댁'과 '며느리'라는 이름이 날 옭아맸구나. 내가 맡은 엄마와 아내, 며느리, 딸의 역할은 정기적인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았다. 오랜 시간 신경 써서 열심히 준비하면 좋겠지만 벼락치기 신공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단기간 바짝 고생하고 끝낼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도 시험은 시험이어서 묵직한 존재감이 마음을 짓누르곤 한다.


발목에 매단 모래주머니를 떼어내듯,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은 일탈을 누리던 시간, 기나긴 연휴 동안 방구석에서 누린 자유는 꽤 달콤했다. 감기는 달갑지 않지만 또다시 찾아온다면 굳이 피할 것 있겠는가.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처럼 마주보고 앉아 쉼을 누려도 좋겠다. 특히, 명절 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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