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비 해방일지: 작지만 거대한 일탈
소파를 치운 거실엔 햇살이 드리우고 바람이 오갔다. 물걸레 청소 로봇이 거침없이 거실 바닥을 가로지르면 얇게 쌓인 먼지가 자취를 감췄다. 창밖 풍경이 바닥에 어른거린다. 거대한 가구가 사라지자 고요한 여백이 공간을 채웠다.
부작용은 오래지 않아 등장했다. 아무도 거실에 머물지 않았다. 아니 머물 수 없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반들반들한 맨바닥에 큰대(大) 자로 누워 팔과 다리를 자동차 와이퍼처럼 움직여도 충분한 그곳에 아무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지 않았다. 소파와 한 몸이던 남편은 퇴근하자 안방 침대로 곧장 사라졌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도 읽고 뒹굴거리던 아이들은 거실을 한 바퀴 휘휘 돌고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에는 갈 곳 잃은 테이블과 안주인인 나만 남았다.
입식 생활이 당연해진 가족을 위해 앉을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결국, 소파로군. 소파를 사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도 손바닥 뒤집듯 엎어지는 게 인생이다. 일하다 싫증 나면 소파를 검색했다. 덩치 큰 가구는 실물을 확인해야 하니 발품 파는 수고도 잊지 않았다. 품질과 디자인, 내구성과 가족의 취향을 모두 가격과 맞추다 보면 결정은 늘 막판에 미끄러졌다. 눈에 담은 갖가지 소파들이 머릿속에 겹겹이 쌓였다.
지난 주말, 하늘이 흐릿했다. 주말이지만 평일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일상. 말끔하게 정돈된 거실을 늘 그렇듯 눈으로 훑었다. 익숙한 우리 집, 새로울 것 없는 풍경, 지루했다. 오늘이 이렇게 흘러가면 다시 월요일이 오겠구나. 내일도 모레도 달라질 게 없는 일상. 벌떡 일어났다. "여보, 소파를 사야겠어. 지금 가서 마음에 들면 그냥 바로 살게요. 그래도 되죠?" 이날은 그런 날이었다. 이 소파를 넣다가 저 소파를 넣다가, 3개월째 맞추고 있는 퍼즐을 별안간 끝내는 날.
선택과 결정이 조심스러운 터라 평소 물건을 한 번에 사지 못한다. 더 나은 게 저 너머에 있을 것 같아서 보고 또 둘러본다. 세상 모든 물건을 가능한 한 모두 살펴보겠다는 일념으로 지구 끝을 향하듯 발걸음을 옮기고 또 옮긴다. 지갑을 열기까지 수십 번 생각을 접었다 펼친다. 16킬로미터를 달려간 그곳에는 고심했던 소파 중 하나가 있었다. 찾던 것보다 사이즈가 크고, 다소 육중했지만 전시상품이라 할인폭이 컸다. 눈빛이 흔들리는 내게 직원이 귀띔했다. "10% 더 할인해 드릴 게요. 그럼 반값인데, 저희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카드를 꺼냈다. 구매 계약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소파는 추석 지나 배송된다. 이렇게 고가 물건을 10분 만에 덜컥 사도 되는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너무 급했어'라는 다른 목소리가 들릴 때 귀를 닫았다. '그동안 고민한 시간이 얼마인데. 소파가 들어오면 멋질 거야. 러그를 깔고. 네 가족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리의 또 다른 일상이 될 거야.' 작은 일탈에 마음이 상쾌했다.
같은 시간, 둘째 아이는 가방을 둘러메고 이태원으로 나갔다. 루틴대로 꼬박꼬박 움직일 때 안정감을 느끼는 열여섯 사춘기 아이가 바람을 쐬고 싶다고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며, 집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향해 홀로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넜다. 낯선 동네를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밥을 먹고 들어왔다. 쑥스러워 식당에서 반찬 더 달라는 말도 못 하는 아이가 발그레진 얼굴로 말했다. "조금 떨렸지만 재미있었어요.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나가서 혼자 놀다 와도 돼요?"
가끔은 파격을 꿈꾼다. 무탈하게 돌아가는 일상에 감사하면서도 지루함이 고개를 들 때 일탈을 시도한다. 비록 멀리 튀어 나가지 못하고 크게 저지르지 못하지만 매일 오가는 동선에서 한 발짝을 더 떼어낸다. 실행하기까지 여러 번 시뮬레이션해 보는 성향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사소한 시도를 위해 거대한 마음을 품는다. 긴장과 설렘 사이로 사뿐 바람이 분다. 이 작은 과감함이 서로를 불러 모으는 신호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