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유치원 셔틀을 태우고 둘째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오전 10시 시작하는 강의에 늦지 않게 참석할 수 있다. 당시 두 아이는 여섯 살, 네 살. 큰아이의 분리불안을 해결하겠다고 육아휴직을 했지만 하루 종일 아이들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 역시 일정을 소화했다. 엄마 말을 비교적 잘 듣는 아이들이지만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아이는 아이다. 옷 입고 아침 먹는 속도가 내 성에 안 찬다. 아침 시간은 늘 쫓기듯 바쁘다.
늦었단 말이야! 엄마가 뭐라고 했어. 빨리빨리 해야 한다고 했지!!
두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옷을 입히고 짐을 챙겨 현관문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내 고성은 멈추지 않았다. 아침시간 유치원 셔틀을 놓치면 하루가 엉클어져 버린다. 모든 동선을 고려해 큰아이 셔틀을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태워야 했다. 그러려면 20분 거리의 옆동네로 넘어가야 한다. 출근길 양재천변을 운전하는 나는 난폭한 카레이서로 돌변한다. 셔틀을 놓치면 막히는 양재대로를 타고 30분을 달려 유치원에 직접 아이를 데려다줘야 한다. 둘째 어린이집은 반대 방향, 내가 갈 곳은 또 그 반대 방향. 늦을까 쫄깃해지는 마음이 늘 괴로워서 아침시간 아이들을 다그치고 다그쳤다.
딩동.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바로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선다. 누군가 탄다. 헉. 미친 듯이 떠들어댔던 내 입이 닫혔다. 이리 민망할 수가. 우리 아이들의 표정은 안 봐도 비디오다. 엄마에게 혼나서 잔뜩 움츠러들었는데 낯선 사람까지 탔다. 우리만의 사적 공간이 갑자기 공공 영역으로 바뀌어버린 당혹감. 아니지, 엘리베이터는 원래 공용 공간이었어.
정신없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달린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다.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던 그 모진 말들을 그 사람도 들었을 거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정신 나간 여자가 탔나 싶었을 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마치 여전히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듯 심히 부끄럽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잔소리가 꽂힌 아이들의 마음은? 아이들에게 퍼부을 때는 괜찮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 앞에선 창피하다니. 남이 들어서 부끄러울 말이었다면 작디작은 아이들에게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이 뭔 죄라고. 그리 귀하고 소중해서 육아휴직까지 하고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섰는데 아침에 조금 늦었다고 기를 쓰고 화를 내다니.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비로소 올라온다. 참 이중적이다. 어이가 없다. 현관문 안과 밖에서 내 마음이 이리 달라지다니.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고 애쓰면서도 지극히 위선적인 내 모습에 말문이 막힌다. 바람직한 양육태도는 일관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이 내 인격을 한결같이 지키는 것도 못하면서 좋은 엄마를 하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한심하다. 뒷자리에 탄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