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동생 하는 엄마들
전업주부가 되니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유치원, 어린이집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붙어 있는다. 눈 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때론 감고 있는 눈조차 뜨게 만드는 녀석들. 인생 선배들은 "그때가 제일 좋을 때야."라고 말하지만 결코 심정적으로 공감되지 않는다. 그게 진심 어린 충고로 들리는 건 내 나이가 그녀들의 나이쯤 될 때겠지.
내 아이 친구 엄마들. 새롭게 형성된 인간관계다.
유치원 같은 반 엄마들,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동네 엄마들, 같은 축구클럽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들. 남편보다 더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그녀들. 새로운 세상이다. 매일 놀이터에 나가면 아이들은 뛰어놀았고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 이야기, 일상 이야기, 요즘 핫한 교육 이야기. 그러다 누구 집 이야기로 흘러간다. 왜 그토록 남 이야기를 하는지. 남편 흉, 시댁 흉보고 끝나기도 한다. 어떤 모임의 성격을 알려면 헤어지기 전에 나누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보면 된다고 했던가. 마지막 나눈 주제가 기억에 남아 그 사람을, 모임을 규정하게 된다.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 다음부터 말조심해야겠다 싶은 사람, 되도록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게 만드는 사람. 기자로 살면서 만날 남의 이야기를 그리 해댔는데 엄마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아니,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인가 보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여러 가지 '문화 충격'을 받는다. 그중 하나가 '호칭'이다. 그녀들의 입에서 내 이름 석 자가 나오는 건 기대도 않는다. 묻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았으니. 그런데 엄마들은 조금 친해지면 아이 이름 뒤에 '언니'를 붙여 불렀다. 이런 요상스러운 조합이 있나. 아이 이름이 '철수'면 '철수 엄마'하면 되지 '철수 언니'는 뭐란 말인가. 한국사람은 만나면 '주민등록증'부터 연다더니 엄마들 사이에서도 누가 위인지, 아래인지 꼭 따져 묻는 이들도 있었다. 초면부터 묻는다. "그래서, 몇 년생이세요?" 한 술 더 뜨는 이들도 있다. "어머, OO엄마 XX이네랑 동갑이네." 누군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XX 엄마가 나선다. "언니, 전 빠른 79예요! 학번이 빠르다고요!" 아, 빠른... 나보다 자기가 '언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나 보다. 엄마들 사이에 굳이 그렇게 서열 정리를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누구 어머니'라고 그녀들을 불렀다. 학부모 타이틀을 달고 처음 만나 친분을 나눴던 한 아이 엄마는 아주 정중하게 나를 'OO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같은 학부모로 나를 존중한다는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늘 내게 말을 높였다. 서로 존칭을 쓰며 적당한 거리를 지켰다. 아이들이 각자 다른 초등학교를 갔지만 꽤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도 그 덕분이리라. 그래서 난 여전히 아이 친구 엄마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어머니'다. 굳이 그녀들의 출생연도를 확인할 마음도 없다.
간혹 진정 내 친언니처럼 느껴지면 그제야 '언니'라고 부른다. 물론 '언니'라고 부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내가 솔직한 마음을 나눌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낯 간지럽고 닭살 돋았는데 나 역시 대한민국 엄마 중 하나니까. 별 수 없다. 몇 번 하다 보니 입에 착착 붙는다. 가끔 친한 그녀들의 이름 뒤에 장난스럽게 여사님을 붙이기도 한다. '이희경 여사님~' 이렇게 말이다. 내게 '언니'라는 소리를 듣는 그녀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엄마들은 미묘한 관계다. 내 배꼽 친구보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며 친해지지만 나 자신에서 출발한 관계가 아니다. 내 아이를 매개로, 다른 아이와 알게 되고 그 아이 엄마와 연결되는 구조다. 그런데 가끔 고등학교 동창을 대하듯 다른 엄마들을 대하는 이들을 만난다. '언니', '동생'까진 좋았는데 선을 넘어서 막말로 헐뜯고 흉보는 이들도 가끔, 아주 가끔 본다. 그저 마음의 결이 다르다고 치부하기에는 입맛이 씁쓸해지곤 한다. 그래도 누군가의 엄마인데.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인격을 지키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