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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나무 타고 숲에서 뒹굴고

by 오르

"우와, 엄마 이리 와 보세요~!!"


풀숲에 들어가 놀던 큰아들이 신기한 걸 발견했다며 엄마를 부르는데... 쥐란다. 죽은 쥐.

으아악!

쥐라는 말에 경악하며 도망가는 나와 달리, 아들 녀석은 세상 평온하다. 신기한 듯 죽은 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오금이 저릿하다.


언제 저리 용감해진 걸까. 엄마에게 매달려 만날 울기만 해 심약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아들. 갖고 놀던 장난감을 친구에게 뺏겨 속상해도 어쩔 줄 모르고 바라만 보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숲에선 달랐다. 사람마다 용감함이 드러나는 지점이 다르다면, 아이에게 숲은 자신의 자유함이 마음껏 표출되는 곳이었다.


가끔 청계산 자락에 있는 유치원에 아이를 직접 데리러 갔다. 그럴 때면 아이는 바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특히 자신이 애정하는 나무에 보란 듯이, 거침없이 올라갔다. 콧물이 들러붙은 얼굴은 꼬질꼬질했지만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어느 부모는 아이가 한글을 읽고 숫자를 세면 물개 박수를 친다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가 나무에 높이 올라갈 때마다 벅찬 감동을 느꼈다.


숲 활동은 유치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매일 '득템'한 나뭇가지가 집에 쌓여갔다. 곧게 뻗은 단단한 나뭇가지는 숲에서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보물이었다. 심마니가 산삼을 찾듯 아이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나뭇가지를 발견할 때면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 쌓인 나뭇가지가 한 더미였다. 소중한 나뭇가지를 동생이 만질라치면 기겁을 했다. "형아 허락받고 갖고 놀아야 해!" 아예 현관 귀퉁이에 나뭇가지 전용함을 마련해줬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 '이제는 없어도 괜찮다'라고 말하기 전까지 근 7년 넘게 우리집 현관에는 그 나뭇가지들이 늘 있었다.


숲에서 하루 종일 뛰논 아이가 집에 올 땐 흙 범벅이 된 '거지 꼬라지'였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현관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두고 옷을 벗고 들어와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면 청소하는 분들이 우리를 쫓아다니며 물걸레질을 할 정도였다. 옷을 세탁기에 직접 투하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고 옷에 묻은 흙과 풀, 나뭇잎을 애벌로 헹궈냈다. 대야 가득 흙이 나오면 그걸 들고 1층 화단으로 내려갔다. 욕실에 그대로 버렸다가는 금방이라도 하수구가 막힐 것 같았다. 살림하는 엄마로선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애프터서비스중_브런치 포스팅 사진.jpg 형을 따라 다니던 둘째 어릴 적


만날 숲에서 뛰어놀다 보니 아이는 놀다가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나와 남편이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온 몸을 뒹굴며 놀고 공원 숲에 마구 들어가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00아, 일어나. 누워서 그렇게 놀면 옷 더러워져."

하루는 남편의 말을 듣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라고 큰돈 들여 숲유치원에 보냈는데 아이에게 주말에는 깔끔하게 놀라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이가 얼마나 헷갈리겠는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밖에서 놀 때는 '옷 더러워진다', '살살 놀아라'라고 말하지 않기로.


그다음부터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도, 공원에서도 종횡무진이었다. 그렇게 노는 아이는 우리 아들뿐이었다. 보통 엄마들은 조금이라도 옷이 더러워질 듯하면 놀던 아이를 불러 세운다.

"xx야, 그렇게 놀면 안 돼. 옷 더러워져."

직접 빨래해야 하는 엄마 마음은 당연하다. 더러워진 옷 하나하나 쌓여가면 그 자체가 큰 일거리다. 나라고 왜 안 그렇겠는가. 옷 조심하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올 때마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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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분리불안으로 힘들어했던 아이가 눈 앞에 엄마를 붙들어 두고 놀면서 자존감을 찾아가는 중이라 여겼다. 밤마다 울던 아이를 떠올리며 '지금은 회복 중'이라고 되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엄마를 누리며 자유롭게 맘껏 놀게 하는 일이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놀겠는가. 옷은 빨면 되고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작아지기 전까지 입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제 백화점 옷도 안 입힐 건데 아무렴 어떠랴.


그리 놀고도 날이 좋으면 집 앞에 산에 올랐다. 산은 두 아들의 놀이터였다. 멋진 단독주택을 구경하며 산을 오르는 일이 당시 우리가 잘하는 놀이였다. 네다섯 살 남짓한 둘째도 곧잘 산을 탔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 큰 바위가 있으면 꼭 밟고 섰다. 나뭇가지만 있으면 늘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이 됐다. 한날은 지나가던 경찰이 위험하다며 아이를 바위에서 내려오게 했다.

"거기 그렇게 높이 올라가면 위험해. 내려와라!"

그리고 내게도 한 마디 했다. "애 위험하게 이렇게 두시면 어떻게 합니까?!" 뭐 이런 무책임한 엄마가 있냐는 투로. 바위 바닥은 충분히 편편하고 널따랗건만.


출산휴가만 겨우 끝내고 복직하느라 큰아이를 돌 전에 어린이집에 보냈었다. 바깥일 하느라 피곤하다며 아이들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놀아주지도 못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맘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래서 목숨을 잃을 만큼, 크게 다칠 만큼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몸으로 움직여 놀 자유를 아이에게 줬다. 날이 덥든 춥든 매일 놀이터에 나갔고 함께 산을 탔다. 아이들 밥을 해 먹이고 빨래를 하고 집을 치워야 했다. 남들 다 하는 일이지만 살림 한 번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내겐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그러니 밤마다 두 아들을 양 옆에 끼고 책을 읽으면서 먼저 졸기 일쑤였다. 내 몸은 극히 힘들었던 시간,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살을 부대끼며 한없이 행복했을 시간.


사춘기 정점을 찍는다는 열다섯 살, 큰아들은 이제 엄마 키를 훌쩍 넘어섰다. 다시 바빠진 엄마를 위한다며 오늘도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한다.

"엄마 힘들잖아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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